맑시즘과 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

이것이 비판 이론이 뚫고 나갈 근거가 되는데, 맑스 이론의 과학혁명을 사적유물론의 토대까지 이르게 한다. 이를 통해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거대한 전환기에 직면하여 요구되는 생태 혁명과 과학혁명의 다섯가지 결론을 유도해낼 수 있다.

첫째, 세계 환경을 위협하는 문제는 추상적인 경제 성장만이 아니라 독점금융자본의 현 단계 에서 자본의 축적이다.  즉, 양적 개발만이 아니라 자연의 질적 개발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이는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낭비를 부추겨 축적을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독점금융단계와 연계된 생태적 가치 형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에서는 발전이 진행되었고, 국민의 물질적인 요구는 충족되었으며, 질적인 인간 발전이 강조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가치 팽창과 상품 소비가 필요하고 결과적으로 에너지와 물질의 처리량은 늘어난다. 오늘날 미국에서 연간 1조달러에 육박하는 판매 활동으로, 환경에 유해한 합성 상품의 형태로 경제 폐기물을 쏟아내며 추진된다. 1960년대 맑스주의 경제학자 폴 배런은 “독점자본주의 문화에 푹 빠진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썼다. 축적을 부추기는 군사 폐기물을 포함해 엄청난 폐기물 시스템에 더해서, 금융화된 상부구조는 0.01%의 상류층으로 부의 이동을 가속화시켰다. 신용과 부채 시스템으로 나타난 새로운 금융 구조는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인위적으로 활성화된 성장, 경제적 낭비, 금융화된 부라는 비이성적인 시스템이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실질적인 평등이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엎어버려야할 극심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비이성적인 시스템이다.

지금처럼 부유한 국가에서 경제 성장이 계속된다면 – 상대적인 경기침체의 현 시기의 기준으로 – 전세계적으로 끔찍한 결과를 피할 수 없으며 기후예산이 바닥나는 것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 성장과 우회생산에 적합한 생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기술적으로 파괴적인 사회의 경향 – 즉 중국에서 생산한 일회용 숟가락을 미국에서 잠깐 사용하고 버리는 이 과정에서 유독한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 이 지구의 생물지구화학 과정을 위협하고 있다. 자본은 사회적 신진대사과정을 자본의 생리에 알맞게 재구성하려고 하며 자연의 한계를 단지 정복해야할 장애물로 여기면서 신진대사의 균열과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다. 이 모든 것이 경제 성장에 한계를 두어야 하고 특히 오늘날 파괴적인 자본주의의 팽창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자본주의는 현재 경제적이고 환경적인 새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과잉 축적, 경기침체, 금융화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생태계와 전지구적 수준에서의 생태적 균열과 붕괴로 나타난다. 이런 두 장기적인 시스템의 구조적 위기는 모두 자본 축적의 논리에서 유발되었다는 점을 빼면 서로 환원시킬 수 없다. 생태적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치로 환산될 수 없으며 경제적인 문제와 연계해도 낮은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끊임없이  경기침체의 해결방법은 온갖 수단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즉, 신자유주의적이고 파괴적인 자본주의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해결책은 –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한 시스템의 힘을 넘어 안정적인 방법이지만 일시적이고  임기응변의 방식으로 – 경제적 질곡의 확장을 줄여야 하는 환경에는 치명적이다. 새시대의 위기와 자본주의 시스템 내의 생태는 자본의 논리가 이어지는 한 간극을 넓히면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목적과 생태적 목적 사이의 충돌은 분석의 모순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이다.

셋째, 축적이나 경제 성장이 부유한 국가에서 일시적일지라도 생태적으로 필요해  중단된다면 새로운 재분배 시스템이 필요하다. 1944년 루이스 멈포드는 <인간의 조건>에서 “기본적인 공산주의” 조건에서만  정상상태의 경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본적인 공산주의”는 “생산 기여도나 능력에 따라서가 아닌 필요에 의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멈포드가 맑스 이후에 쓴 용어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윤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생산의 질곡에 반대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진정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회적 잉여를 재분배 한다. 이는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에 따른 사회를 구성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러스가 말했고 맑스가 동의했듯이 충분함의 원리에 따르는 사회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즉, 모두에게 적용가능한 인간 필요의 풍만한 발전을 통해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넷째, 맑스는 지속가능한 인간 발전의 한 요소로 사회주의 모델을 말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과학과 공동체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는 연합생산자에게로 힘이 이동해야 하며, 자연과 사회의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인 신진대사를 인간 필요에 따라 지구의 신진대사에 필요한 것에 맞춰 규제해야 한다. 현재의 맥락에서는 맑스가 말한 신진대사의 균열을 회복시킬 수 있는 인간-자연 신진대사의 “회복”이 필요하다. “신진대사의 회복” 원리를 논하는데 있어서 델 웨스턴은 <지구온난화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저서에서 “필요성은 신진대사 주기 – 생산, 소비, 폐기- 내에서 살기 위해 인간 사회를 위한 것이다. 또한 새로운 경제에서는 태양 에너지가 새로운 투입재가 되어 자급자족 주기의 일부를 형성하는 것은 부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인정될 것이다”라고 썼다. 더구나 현재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새로운 경제, 지구와 새로운 생태적 관계, 태양 에너지 내에서 존재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 기반시설을 만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멈포드의 “기본적인 공산주의”나 필요의 원칙에 기반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다섯째, 예기했던 혁명적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만 만들 수 있다.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널리 인정받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언제 누가 이러한 혁명을 일으킬 것인가? 생태주의적 맑스주의자는 초기 단계의 “환경프롤레타리아” 즉, 존재의 위기를 느껴 경제와 생태 조건의 불가분의 관계를 인식한 노동자 계급이 일어나는 징후가 보인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강등된 물질적 조건과 경제적, 생태적 위기를 일상적으로 느끼고 전반 삶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적, 생태적 위기는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식량 위기, 토지 약탈, 전력 공급 정지, 물 민영화, 오염 심화, 파괴되는 도시, 후퇴하는 공공의료,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 증가가 불평등, 경기침체, 실업률 증가 등과 함게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남아프리카에서는 계급투쟁이 경제 투쟁만큼이나 환경적이다. 즉 환경 노동계급 출현의 징후가 보인다. 논리적인 결과는 시스템에 대항해 물리적인 봉기가 일어날 것이다. 이는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공동 혁명” 투쟁이다. 이는 세계적인 환경/기후정의 운동에서 두드러지며 나오미 클레인이 “블락카디아”(화석연료 산업에 저항하기 위해서 국경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일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_역주)라고 부른 급진적인 직접행동운동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 정치학은 환경 운동, 유색 인종, 여성 운동,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기본적이고 재생산적인 투쟁과 연합하고 함께 진화한다. 이런 생태적 사회적 투쟁은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계층으로부터 힘이 유입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혁명적이다. 즉 이들은 제3세계 노동자, 여성 노동 계급, 제국주의 중심부에 살고 있는 유색 인종, 원주민, 소농과 무토지 농업 노동자, 새로운 형태의 성, 가족, 공동체 건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어디서든 고도로 착취 당하고 가진 것을 빼앗기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혁명적인 투쟁은 두 단계로 일어나야 한다. 첫 단계는 생태민주주의로 폭넓은 연합을 구성하기 위해 지배자의 이해관계 외부에 있는 대다수가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지속가능한 인간 발전의 사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더욱 결정적인 두번째 단계, 혁명적인 투쟁의 생태사회주의 단계를 위한 토대를 형성할 것이다. 이는 실질적인 평등, 생태적인 지속가능성, 집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는 고전적인 맑스의 생태 평론이 현대의 혁명적인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생태민주주의 단계의 목표는 자본의 파괴적인 논리를 저지하는 급진적 개혁을 실행하는 것이 다. 이는 급진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인 변화를 위한 싸움으로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고 현재의 맥락에서 구체적이고 의미있는 투쟁의 형태로 가능한 변화를 말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포함된다.

(1) 선진국에서 연간 8~10%의 탄소 배출 감축 계획

(2) 경제 성장 중단과 소득과 부의 급진적인 재분배, 자원 보존, 배급, 경제적 낭비의 감축 시행

(3) 보편적으로 “국방비”라고 불리는 군비를 환경보호 비용으로 전용

(4) 태양 예산 범위 내에서 고안된 대안적인 에너지 사회 기반 시설 건설

(5) 화력 발전소 폐쇄와 타르샌드 오일과 같은 새로운 화석 연료 사용 저지

(6) 이익의 100%를 일인당 기준으로 모두에게 재분배할 한센이 제안한 탄소비와 배당금 시스템

(7) 신흥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국제적 계획

(8) 유색인종, 빈곤층, 여성, 원주민 제3세계 국민들이 기후 변화의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서 환경정의 원칙의 시행과 이를 기후변화(완전하게 멈출 수 없음) 적응과 연결

(9) 2010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민중협정에서 제안된 모델의 기후 협상과 정책 채택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의 제안은 늘어날 수 있으며 사회 전반에 그리고 개별 인간 발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생태민주주의 발전 단계의 법칙은 현재 세계가 처한 생태적이고 경제적인 새시대의 위기를 다뤄야 하며 세계를 점점 더 재앙으로 이끄는 평상시의 논리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투쟁의 생태민주주의 단계의 논리가 완전하게 시행된다면 생태사회주의 단계를 향한 토대가 형성될 것이다. 민중은 스스로를 대변해 동원하고, 그것으로 생기는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변화는 능력과 필요에 따른 사회 구성에 추동력을 줄 것이다. 사회적 신진대사의 재생산 시스템은 현재와 미래 세대뿐만 아니라 지구 시스템 자체와 다양한 생물종을 고려해 더욱 공산주의적인 기반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필수적인 사회적 생태적 계획은 지역적 필요성과 지역 공동체로부터 시작할 것이며 이러한 필요성과 연계해 조정과 실행을 맡은 더 큰 정치적-행정적 기구와 통합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민중에 의한, 연합된 생산자에 의한 사회라는 점에서 고전적인 의미의 민주적이다. 이 사회에서는 맑스가 말했듯이 “사회화된 인간, 연합된 생산자가 이성적인 방식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신진대사를 통제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인간의 본성을 위해 가장 가치있고 적합한 조건에서 이룰 것이다” 19세기 맑스에게는 이것이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이었다면 21세기에는 인간의 해방과 인간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1980년 영국의 맑스주의 역사학자 E.P. 톰슨은 뉴레프트리뷰에 <절멸주의에 대한 기록, 문명의 마지막 단계>라는 경고성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톰슨은 특히 핵무기 개발과 냉전의 최종 단계에서 핵 교환으로 세계적인 학살의 위험을 겨냥했지만 톰슨의 주장은 시스템에 의한 생태 파괴의 영역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루돌프 바로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재앙 회피>에서 톰슨의 주장에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맑스주의에서 절멸주의 주장을 표명하기 위해 생산력과 파괴력의 관계가 뒤집혔다고 말할 수 있다. 맑스는 그것을 관통하는 핏자국을 목격했고 ‘문명이 남긴 사막’을 보았다.” 오늘날 이렇듯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추세는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가 류와 모든 생명을 위협에 빠뜨리는 파괴적인 창조력으로 전환되면서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멈포드는 <인간의 조건>에서 “외부 세계의 정복에만 에너지를 집중시켜 자신을 신처럼 만들 수 있다는 꿈은 속이 사악하고 가장 허무한 꿈이 되었다”라고 썼다. 결과는 절멸주의의 경제학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전쟁은 자본 축적을 종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맞서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편협한 가치 계산에서는 지구 자체의 한계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에서 우리는 이런 절멸주의 경제학에서 방향을 돌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인류에서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20세기 현질서를 지키려고 했던 자들의 예언은 사실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문명을, 인간의 존재조차도 말살하며 인류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는 우리에게 한가지 선택지만을 남겨주었다. 기후변화가 아닌 시스템 변화를!

 

원문출처: http://monthlyreview.org/2015/11/01/the-great-capitalist-climacteric/


번역: 황정은(사무국장, 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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