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Korea] 우리가 가진 고통

자정에 광화문 광장을 떠난 버스는 아침 6시가 되어서야 팽목항에 도착했다. 수평선은 고층빌딩 때문에 산산이 부서진 서울의 것과 비교해 온전했다. 잔잔한 수평선을 바라보자 참사에 대한 기억이 다시 깨어났다.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선체가 뒤집힌채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를 상상했다. 그리고 세월 호 희생자 중 고 정동수 학생의 물에 퉁퉁 불어버린 시신의 사진이 기억났다. 서울 YMCA에서 열린 1차 청문회 기간에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가 절박한 마음으로 대중에게 공개한 사진이었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는 국회의원을 향해 아직 동수를 가슴에 묻지 못했다며 그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2년이 지났고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진상을 밝혀줄 것이라고 믿었던 특별조사위원회는 6월에 임기가 끝이라는 국회의 주장으로 곧 법적으로 보장된 지위를 잃은 위기에 있다.

2년전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에도 국회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윈회의 특검 실시 요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서 20대 국회에서 특별조사위원회의 요청을 고려해 볼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은 높고 진실은 멀어보인다. 바다는 그러한 엄혹한 진실을 상기시켰다.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그들은 마치 바다 바로 밑에 있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팽목항에 다녀오면서 모순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쪽과 기억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쪽이다. 일상에서 깊은 아픔이 있지만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고, 고통을 무시하고 무관심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에 고통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넓게 본다면 사회가 만들어낸 거대한 고통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냈다. 즉 세월호 참사는 인재였고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 평화에 대한 권리를 박탈했다. 혹자는 어떻게 세월호 참사가 한국의 “모든”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슬프지만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나와는 관계없는 사건으로, 그저 “이상한 사고”로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 직후 정부가 대응한 방식을 보면 우리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현실에서 한발짝 밖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인 것이다.

한국은 신속한 경제 발전을 위해 독재 정권 하에서 국민들은 수년간 심한 심리적인 폭력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했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연결과 삼성 전자, 한류로 “발전한” 국가처럼 보이지만, 세월호 참사 대응에 완전히 실패한 박근혜 정권은 지난 몇십년 간 급속한 발전의 결과를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한국의 억압적인 사회 구조가 우리의 일상에서 재난을 일반화 시켰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만약의 문제”를 남긴다. 이명박 전대통령이 해운산업의 규제 완화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대통령의 “작은 정부” 정책이 국가의 통제를 분권화 시켜 민간 영역을 강화했다. 2009년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면서 세모그룹의 유병은 전회장이 일본에서 노후한 선박을 들여와 세월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세월호 선원들이 배가 가라앉기 시작한 한 시간동안  “가만히 있으라”라고 12번의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2차 청문회에서 세월호의 승객이 탈출 할 수 있었던 “골든 타임”동안 이 방송으로 세월호 안에 남아 있도록 한 사실이 밝혀졌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이 없었다면 바다로 탈출했을 승객들은 구조될 권리를 빼앗겼다. 2차 청문회에서는 국가정보원과 세월호와의 은밀한 관계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국가정보원이 세월호를 구매하고 유지하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정부가 참사의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국민의 안전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타당한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권하에서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며 재발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국가 자본주의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한 문화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서 끝이없는 학력-전문직업의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 그러면서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적 고통을 받는다. 이런 사회적 고통으로 청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다. 감수성이 부족해지면서 참사의 희생자가 우리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나는 희생자가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희생자를 위해 울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사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대응하는 하는 방식으로서의 무관심을 정리하면서 슬픔, 죄책감, 염원, 공허함, 분노와 같은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 생겼다. 공감에는 소유권이 없다. 감정은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팽목항을 같이 갔던 친구인 라리타 야왕산은 나에게 공감의 힘을 말했다. 라리타는 10년이 넘도록 자국에서 이민자 공동체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잃은 수십 건의 사례를 보았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보고 참사에 대한 나의 무관심을 대면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공감이라는 것은 절대로 닳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공감은 길러질수록 깊어지고 더 널리 퍼진다.

황정인(열린강좌 참가자, 성공회대MAINS 대학원생)

참고자료

416참사 2014년도 결과보고서: 온마음리포트(11) ‘416 참사관련 장기적 심리지원을 위한 의료인류학적 기초연구’

Shock Doctrine by Naomi Klein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5309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490909&code=611111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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