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소모임] 뭣이 중헌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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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대한 (The 숲 편집장)
번역: 이주희(번역팀, ISC)

가슴이 드러나는 톱을 입은 상체사진이 거울에 붙어 있다. 이 광고의 대상이 되는 여성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며 상체 사진에 자기 몸을 “맞춰” 볼 것이다. 사진 주위를 “짱이예요~”, “헉! 부럽당~”, “이게 정말 내 가슴이?” 와 같은 속삭임과 생각들이 둘러싸고 있다. QR코드를 찍으면, 이런 시술을 하는 성형외과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의 다음 광고는 “Make me better(더 나은 나를 만들자)” 라는 문구 아래 납작한 배, 그리고 엉덩이와 다리의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여성을 보여 준다. 그 다음 광고에서는 한국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의 다리, 상체, 팔 길이, 엉덩이와 허벅지, 허리, 그리고 가슴둘레를 계량화하여 평가하고 있다. 이상적인 몸은 칭찬과 부러움, 소비의 대상이 되지만, 그 반대는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두 에피소드에서는 출연진 중 한 명이 다른 두 명을 아이처럼 키가 작고 귀엽게 생겼다며 놀려댔다. 다른 출연진들은 중년의 경비원을 연상토록 하는 옷을 입었다고 놀림 받았다.

국제전략센터 여성주의 소모임은 위의 광고와 TV 프로그램 두 가지 매체를 대상으로 미디어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면, 미디어 모니터링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 너무 많이 알게 되어 힘들어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모임의 구성원 중 한 명은 소모임 카톡방에 한 여자에 대한 만화를 올렸다. 페미니즘적 미디어 비평을 진행한 이후, 더 이상 아무것도 마냥 즐길 수 없게 되어, 손에 얼굴을 묻고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2주간 진행된 페미니즘 이론서 공부와   미디어 모니터링을 통해 그 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아름다움”이라는 관념과 이러한 미의 관념을 구성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고통, 통제를 지속해 왔던 나의 역할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름답다”거나 “섹시”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수잔 보르도의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은 1950년대에는 마릴린 먼로와 같이 모성을 상징하는 풍만한 몸을 아름답다고 여겼다고 이야기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 위주인 직업 세계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노력하면서, 절제와 통제력을 보여주는 몸을 가꾸는 것이 매력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기준은 이 두 가지를 넘나들었다. 때로 이 기준들은 현대 한국인들의 S라인에 대한 집착과도 같이 통합되기도 한다. S라인을 가지려면 날씬해야 할 뿐 아니라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해야 한다. 즉, 현대 여성들이 남성 위주의 직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절제와 한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필요한 모성을 요구하는 사회 기풍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보르도는 이런 모순과 긴장이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극에 달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여성성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욕구가 신경성 무식욕증(거식증)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분출된다. 보르도의 관점에서 보면 거식증은 비록 비극적이고 잘못된 것이기는 하나, 절제와 지배를 상징하는 남성의 몸을 지향하는 현대의 금욕 수단이다. 몸에서 지방과 군살을 제거하면서 집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풍만한 여성의 몸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때로는 삶을 대가로 이러한 저항을 한다.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이러한 노력은 정치의식을 발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것이다. 사회적 압박에 저항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여성성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평등을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남성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친다. 나는 앱솔루트 보드카의 광고를 보고 이를 알게 되었다. 광고에서는 두 명의 날씬하고 매력적인 20대 여성이 클럽의 프라이빗 룸에 지루한 듯이 앉아서는 그 장면을 누군가가 완성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 뒤로 “미래는 당신의 것”이라는 네온 사인 글자가 번쩍인다. 남성이 주인공이고, 두 여성은 보조역이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두 여성은 어떤 남성을 만나기 위해 그 곳에 있는 것이고, 그는 앱솔루트 보드카를 판매하는 클럽의 룸을 대여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이 되는 사람일 것이다. 소비되는 상품으로서, 여성은 엄격한 미적 관념과 사회적 규정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소비자로서의 남성은 그들을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렇듯, 해당 광고의 이미지는 시장을 통해 남성을, 그리고 외모와 역할을 통해 여성을 통제한다. 광고에서는 여성들 간의 동지애도,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나 기쁨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지만, 우리는 고지방 · 고열량에 영양분은 별로 없는 가공식품을 소비하듯 여전히 그러한 이미지를 소비한다.

현대 사회의 가공식품은 수렵 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고영양 식품에 대한 갈망을 이용하기 위한 지방과 당분 함유량이 높다. 자라면서 이와 같은 음식에 익숙해짐에 따라 우리의 입맛이 변하게 되고, 건강한 음식을 즐기기가 힘들어진다. 같은 이치로,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날조된 이미지를 계속 소비하면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인간성을 포착하는 데에서 멀어지게 된다.

여성주의 소모임에서는 이론도 공부하지만 각 개인의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에도 도전한다. 이는 단지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아는 것에서 비롯되는 책임에 관한 것이다. 남성이 외모를 가지고 여성을 대상화한다면, 여성 억압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페미니스트로서 해방을 추구한다면, 사회가 여성의 몸에 지속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습관과 관습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 꺾이고 주저할 때, 사람들이 사랑과 연대로 서로를 대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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