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탄압하는 헝가리 정부

글: 안드레아 슈니처(해외통신원, ISC)
번역: 황정은(사무국장, ISC)

4월 헝가리에서는 25년 만에 최대 규모 시위가 열렸다. 중도우파 정부가 통과시킨 비민주적인 법안에 반대한 저항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일말의 논의조차 없이 집권 연립여당은 외국 대학은 본국에도 캠퍼스가 있어야 하고, 양국 정부 간 협정이 있어야 하며, 초빙교수 계약이 있어야 한다는 법안을 지난 4월 4일에 통과시켰다. 2018년 1월까지 헝가리에서 유일하게 이중학위(미국과 헝가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이자 가장 명망 있는 유럽 중앙대학(CEU)은 뉴욕에 캠퍼스를 열어야 하지만, 연방정부가 아니라 뉴욕주정부에서 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 정부와의 협정만으로는 이 조항을 이행할 수 없다. 결국 CEU는 운영을 중단하거나 불법운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법안 통과 후, 약 8만 명이 정부 결정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언론의 자유, 비정부 기구, 학문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연이은 공격에 자극받은 것이다.

필자가 2016년 8월 한국을 떠나 CEU 석사 학위 과정을 위해 헝가리에 온 데에는 미국 학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대학원에서 누릴 수 있었던 새로운 기회들도 만족스러웠다. 필자가 한 B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중으로 참가했을 당시, CEU 졸업생이자 정부 대변인인 졸탄 코바츠 1는 정부가 비정부기구를 위협한 것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비난에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단호하고 전투적인 태도로 부인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신문사가 정부의 부패 스캔들을 보도한 이후 폐쇄되었다. 국영 언론사는 이 신문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신문사 폐쇄를 보도했다. 이렇게 성급하게 폐쇄한 것은 기본노동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눈에 띄었다. 또한, 해당 신문사가 신규 직원을 채용했기 때문에 갑자기 폐쇄한 이유에 대해 더욱 의심이 갔다. 신문사의 어려운 재무 상태를 탓하는 것은 2015년 정부 지시로 재정 구조조정을 했던 데에서 문제가 기인했다는 사실을 가려버렸다. 폐쇄 이후, 신문사가 수십 년간 쌓아온 기록을 인터넷 상에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음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정부 전략을 이야기했다. 조세 당국과 경찰은 비정부기구 사무실을 불시에 방문해 단체의 합법성을 증명할 문서를 요구했다. 특히 정부는 사회 정의, 소수자 권리, 투명성과 반부패와 관련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를 목표물로 삼으며 외세의 간섭을 뿌리 뽑기 위한 것으로 정부 행동을 정당화했다. 정부가 이런 단체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아 유럽연합, 노르웨이, 조지 소로스 2가 설립한 열린사회연구소 3에서 지원하는 자금에 의존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비정부기구는 외국 자금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이고 국가주의적 어젠다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집권 연립여당은 비정부기구 블랙리스트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4월 초, 국회의원들은 의회에 이중 국적 학위를 주는 학교(CEU)를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대학에 부담이 되는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거나 학교를 헝가리에서 추방할 것에 관한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친정부 성향의 매체에서 갑자기 대학의 합법성에 대한 소문과 빅토르 오르반 4 헝가리 총리의 근거 없는 비난이 등장했다. 신문사와 비정부기구에 자행되었던 것과 비슷한 공격이 헝가리 최고의 대학에 가해진 것이다.

그 누구도 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헝가리인 친구도 집권여당의 가식이며 기반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루하루 갈 수록 대학 설립자인 조지 소로스에 대한 언급은 점점 거세지고 그를 향한 비난은 늘어갔다. 소로스는 지난 20년간 대학 운영에 대한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그는 대학 내 학자, 1,800여 명의 석박사 학생을 그의 생각으로 “세뇌”시키는 “기만적인 지도자”였다. 나치가 헝가리를 점령한 시대에서 살아남은 부다페스트 출신의 유대인 소로스는 금융시장 기법을 이용해 잉글랜드 은행을 파산시켰고, 그렇게 벌어들인 수백만 달러를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사용했다. 집권 여당의 최고 수뇌부는 이민에서부터 헝가리 대학이 상대적으로 하위권 대학이라는 이유로 소로스를 목표물로 잡았다. 오르반 총리의 반유대주의 수사와 우파 지지를 모으기 위한 다른 권위주의적 지도자 사이에 충격적인 역사적 유사성이 보인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 학생들은 학문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했다. 4월 8일, 필자 또한 학문의 자유를 위해 열린 8만여 명의 시위에 참가했다. 25년 만에 열린 최대 규모 시위였다.

이번 시위의 주요 주최자이며 정치과학을 전공하는 헝가리인 대학원생인 레호타이 5는 이 상황에서 시위의 역할에 대해서 “정부는 거리에 나선 8만 명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논했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청년들이 많다. 이전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음을 보여준다”고 레호타이는 덧붙였다.

블루컬러 노동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학자 모두가 모여 행진했다. 참가자 수가 많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열기를 누르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 같았다.

“항상 시위를 해야 하는 새로운 이유가 생긴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모여야 한다. 그리고 학문의 자유, 시민단체를 위해 모여야 한다. 정부는 우리가 지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레호타이는 말했다.

이번 시위는 헝가리인들이 조직하고 참여했지만, 집권여당 의원들은 단순히 시위대의 목소리를 묵살하며 소로스에게서 돈을 받은 외국인이라고 말한다.

레호타이가 법에 따라 경찰 당국에 8만 명의 집회 신고를 한 후, 집회 당일 아침에 경찰이 그녀의 아파트에 나타났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주위를 돌고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 물었다. 그가 건물의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 경찰차 여러 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이틀 정도 집에서 잘 수 없었다. 시위대 맨 앞에 있어서 사진에 많이 찍혔던 또 다른 집회 주최자의 말을 들어보니, 경찰이 찾아와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경찰이 창문으로는 여권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현관문을 열고 여권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법적으로 경찰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을 허용한 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경찰은 집 안을 수색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레호타이는 설명했다.

레호타이와 다른 집회 주최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듣고 필자는 충격을 받았고 두려워졌다. 그 주에 대학원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해 배웠던 것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결국 경찰은 나와 다른 학생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몰랐다는 발표를 했다”고 레호타이는 덧붙였다.

1997년부터 CEU에서 법학과 교수로 재직한 레홋스키 6 교수는 12년 간 유럽사회권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전(前) CEU 법학부 학장이다. 레홋스키 교수는 헝가리 역사와 법률과 관련된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레홋스키 교수는 두 명의 헝가리 초등학교 아이가 경찰관과 히잡 7을 쓰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역할을 맡아 역할극 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역할극 대본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준 것이었다. 경찰 역할을 맡은 남자아이는 시리아 난민 역할을 하는 여자아이에게 감옥으로 보내버리겠다며 위협했고, 이후 경찰은 자신에게 내민 한 뭉치의 돈을 받기로 결정한다. 역할극의 마지막은 두 명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이었다. 레홋스키 교수는 이 영상이 “비인간성, 탐욕, 증오를 주입시키는” 정부의 정책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충격을 받는다. 오르반 총리의 주요 전략은 적을 색출하고 이들과 싸우는 것에 기반한다. 이것이 헝가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공공의 적이 없으면 항상 우리끼리 싸운다”고 레홋스키 교수는 설명한다.

레홋스키 교수는 정부가 반대의 목소리를 진압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른 대학이 CEU를 지지하면 그들의 지원금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수들이 아무런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항상 정부를 지지했던 일부 고위급 학자들이 놀랍게도 용기 있는 선언과 반박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미셸 푸코 8가 설명했듯이 우리는 간수가 없어도 되는 원형 교도소에 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입과 눈을 닫고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수용하는 곳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비문명화’되고 시민단체는 약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전술은 헝가리 역사를 보았을 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 정권은 권위주의적인 공산주의 정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1950년대 나는 어린 아이였다. 그 때의 반지성주의를 기억한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지식인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하위 계급이자 서구 자본주의자와 이전 정권의 숨은 스파이로 낙인 찍혔다. 1950년대에 국제 금권정치의 음모로부터 비롯되었던 반서구 선전 슬로건이 현재의 헝가리에서 다시금 대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움직임을 보는 게 쉽지 않다”고 레홋스키 교수는 말한다.  

정부의 수사는 분열을 조장한다. 여름 내내 보였던 반이민 선전물과 유사한 “브뤼셀을 막자”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대중교통수단, 도로 광고판, 그리고 정부 간행물에 게시되었다. “정부가 반유럽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 정부는 유럽연합이 헝가리를 식민지화하고 주권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고 레홋스키 교수는 설명한다. 사실 “오르반 총리는 의사결정기구의 일원으로 유럽연합의 조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심지어 이를 차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르반 총리는 국민들이 유럽에 등을 돌리도록 선동하는 것을 택했다.”

레홋스키 교수는 현재 민주주의가 결여된 상황에 대해 비관적이다. 오히려 헝가리 정부에 대한 유럽과 국제 사회의 비판에서 희망을 본다.

“현재 전세계가 CEU를 알고 있다. 국제사회가 나서길 바란다. 정의, 인간애, 자유 이 세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가치가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레홋스키 교수가 말했다.

그 순간 내가 선택한 대학원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 교수진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150여개 국가 출신의 학생들은 다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풍부하게 토론한다. 그리고 CEU는 현재 헝가리 최고의 도서관인 학교 도서관을 다른 대학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CEU는 한 때 헝가리에서 존경 받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소로스는 1988년 헝가리의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을 지원하고 열린사회연구소와 대학을 세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점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고 레홋스키 교수가 말했다. “헝가리인들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공산주의 하에서 전형적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이었다. 몇 번의 혁명을 제외하고 우리는 ‘문명화’하는 시기를 갖지 못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충분히 자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한다.”

굳게 닫힌 국경으로 둘러싸인 헝가리에서 학문의 자유가 살아남으려면 레홋타이와 같은 활동가들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어려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미래는 여기에 달렸다.

Notes:

  1. Zoltán Kovács
  2. George Soros
  3. Open Society Foundation
  4. Viktor Orbán
  5. Orsolya Lehotai
  6. Csilla Kollonay-Lehoczky
  7. 원문에서는 헤드 스카프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무슬림 여성이 쓰고 있는 히잡을 의미한 것임.
  8. Michel Fouc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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