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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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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숲 4월호 목차 

1. 세상을 바꾸는 시간

  • 풀뿌리 민중의 힘으로 인수한 제1호 제과점

2. 같이 한걸음

  • 남미와 카리브 지역에서 일어나는 여성주의 운동
  • 트럼프 시대, 흑인이 애국자가 된다는 것은?
  •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헝가리 정부

3.변화의 물결

  • 결코 잊혀지지 않는 날이 있다.

4. 국제뉴스

  • [프랑스] 마크롱과 르펜, 두 후보의 거의 상반되는 정책
  • [라틴아메리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혁명 주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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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이주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cultura Nuestra의 “http://laculturanuestra.com/tomada-primera-panaderia-por-el-poder-popular-en-caracas/”를 번역한 글입니다.

지역 공동체에 대한 방해 행위와 절도, 고양이 털이 묻은 사탕, 녹슨 주전자에 고인 물로 만든 커피, 방치된 음식 위를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착취당한 노동자,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 등. 이 모든 일이 카라카스 도심의 바랄트 가 1에 위치한 민간 제과점인 맨션 2에서 일어났다. 지역 주민들은 상품에 적정 가격을 매기도록 요구했으나, 오히려 원래 빵의 양이었던 180g보다 더 적은 140g의 빵을 받았다.

일명 ‘마른 사람 3으로 알려진 레니스 꼬로모또 무리요 4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 제과점에서 5년간 커피와 조제식품을 만들었다. 대중을 향한 메시지를 통해 그녀는 “차베스 정부 때 있었던 노동자에게 주 2일의 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노동법은 제과점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일해야만 했고, 휴가는 주당 1일뿐이었다. 나는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그 나머지 날조차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하고 주당 220,000 볼리바를 받았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서 12시까지 일하고, 아이를 보기 위해 잠깐 나갔다가, 오후 4시까지 돌아와 8시 반까지 일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즉, 지난 5년간 노동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일 9시간 이상을 일해야만 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정부로부터 밀가루를 지급받아 90%를 빵 생산에, 나머지 10%를 사탕류 생산에 이용해야 했지만, 이 제과점에서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였다. 밀가루를 많이 받기 위해 여러 업체의 코드를 이용하여 정량보다 많은 밀가루를 지급받았지만, 실제로는 하루 5포대 정도만 이용했다. 이 중에서도 빵 생산에 이용된 것은 2포대 정도에 불과했다.

창고에 쌓여 있는 밀가루

커피 제조에 사용된 물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빵과의 전쟁”에 대응한 제과점 인수

(민중들의) 제과점 인수 며칠 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국민 빵 계획 5의 일환으로, 공급 및 생산을 위한 지역위원회(CLAP) 6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100여 개 지역 제과점의 활성화를 공표했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어떤 제과점의 밀가루 투기 의혹이 있을 경우, 해당 제과점은 국가에 인수되어 소유권이 CLAP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빵과의 전쟁”을 추구하는 세력은 법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었다.

이 발표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발표 후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두로의 지원과 문화운동의 집 “라 민카 7,” 그리고 국가 프로젝트 누에스뜨라아메리까 8의 플랫폼인 꼬뮤니다드 알 만도 9 및 까라까스 시 정부의 협업을 통해 CLAP과 여러 단체들이 모여 이 제과점을 인수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단체에는 알뚜로 미체레나 10, 미시아 하신따, 11, 하르딘 미라플로레스 12, 빅또리아 데 알따그라시아 13 등이 있었다.

호세 엔리케 솔로르자노 “요다”, 라 민카 대변인

라 민카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호세 엔리케 솔로르자노 모랄레스 “요다 14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민중을 구하기 위한 민중의 직접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경제 전쟁으로 인한 공격을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조직된 공동체와 혁명적 과정을 통해서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이 생산 영역을 회수해서 민중에게 돌려줄 것이다.” 2015년에 라 민카는 개인 생산자 및 빵 생산업자 연합의 모임 15을 결성했고, 이 모임은 소규모의 빵 생산업자들을 돕기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우리는 민중의 힘에 기반한 단체들과 함께하는 지역 공동체로서, 이 제과점을 인수해 빵이 하나의 상품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모두가 접근 가능하고 건강한 음식이 되도록 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상업적인 제과 산업 논리를 역동적인 지역 제과점으로 바꿀 것이다. 거기에는 착취하는 사람도, 착취당하는 사람도, 노동의 구별도 없다. 노동자와 생산자 모두가 자유롭고, 그들의 서비스가 만드는 경제적 이익이 단지 누구 한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중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투자에 이용될 것이다. 운동장과 인도의 수리, 문화 활동 창조, 통합 진단센터의 설립 및 그 지역의 CLAP 강화 등에 이용되는 것이다.”

새롭게 생산된 빵과 새 가격

새로운 공동체 제과점을 위한 불꽃

까라까스에서 문화단체와 조직된 민중이 제과점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변의 주역들은 이번 제과점 인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불꽃을 하나 지폈다. 민간 제과점은 이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저 이익을 위해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제과점을 운영한다면, 그들은 이 혁명에서 모든 것을 박탈당할 것”이라고 요다는 말한다. 해당 제과점은 ‘공동체 제과점 라 민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 제과점은 전통적인 밀가루 빵을 만들어 파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밀가루 대체재를 사용할 것이고, 더 많은 생산자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분업에 대해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사회적 관계를 바꾸기 위해서 모두가 경영과 빵 제조, 청소, 공동체와의 소통 등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이다. 단지 제빵사나 빵 만드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혁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에 필요한 모든 임무를 맡는 것이다. 문화나 예술, 철학, 빵, 직물 등을 만들 때에도, 총체적 인간으로서 일할 것이다.

증대된 빵 생산량

이 새로운 단계를 위해서, 라 민카는 수년 동안 해당 제과점에서 비위생적이고 부당한 노동 환경에서 고통받아 온 노동자에 의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한다. 우리의 적은 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적은 바로 고용주이다”라는 내용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도 만날 것이다.

주방은 분주하다. “교사 민중” 내생적 개발 센터 16의 동지들이 빵을 굽고 있기 때문이다. 제과점의 대변인이 마이크를 들고서 어떻게 이 새 공간이 식량에 대한 일상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정문이 열리자 손님들은 갓 구운 신선한 빵을 구입하려고 제과점으로 들어섰다. 몇 분이 지나자마자, 376개의 빵이 합리적인 가격에 팔려 나갔음이 장부에 기재되었다. 이제부터 이 제과점은 밀가루 10포대를 빵 생산에 이용할 예정이다. 이는 하루에 만여 개의 빵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우파들이 경제 전쟁으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는 강해지고 활력을 얻을 것이고, 더 큰 걸음을 지속적으로 내디딜 것이다.”

Notes:

  1. Baralt Ave
  2. Mansion Bakery
  3. La flaca (라 플라카)
  4. Lenis Coromoto Murillo
  5. Bread Plan for the People
  6. Local Committees for Supply and Production (스페인어로 CLAP)
  7. House of Cultural Movements, “La Minka”
  8. Nuestramerica
  9. Comunidad al Mando
  10. Arturo Michelena
  11. Misia Jacinta[/ref[ 꾸아르뗄 데 미라플로레스 17Cuartel de Miraflores
  12. Jardin Miraflores
  13. Victoria de Altagracia
  14. Jose Enrique Solorzano Morales “Yoda”
  15. Gathering of Free and Associated Bread Producers
  16. “Teacher People” Endogenous Developmen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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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2017년 4월 25일 에콰도르 끼또
글 : 마리아 에밀리아 두란 가르시아 1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 여성, 여성주의 활동가)

번역 : 배경진 (국제팀, ISC)
황정은 (사무국장, ISC)
심태은 (숲 한글판 편집장, ISC)

20세기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 여성의 시민권을 보장받기 위한 정치 투쟁으로 여성주의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개발도상”국 여성은 기존의 식민지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정치경제적 관계에서 기인한 아주 다른 조건에 맞닥뜨려야 했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 2의 사회운동은 국제적인 자본주의 질서에서 “여성주의자”가 된다는 것, “주변부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정치적 성찰에 기반해 지난 몇십 년을 거쳐 성장했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주의 의제는 여성 농민, 노동자, 원주민, 아프리카계, 이주민,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선 가사노동자의 투쟁에서 두드러지며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은 이 지역에서 일고 있는 여성주의 운동에 반영되어 있다.

한눈에 보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대체로 경제 성장을 구가했다. 이로 인해 인구 대다수의 생활 여건이 좋아졌고, 여성 권리를 인정하는 법체계도 확대되었다. 즉,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없는 삶을 위한 법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시행되었으며, 국가에서 여성의 정치경제적 참여를 인정했고,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이 신장되었다. 이러한 진보로 이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의 처우는 개선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 질서로 회귀라는 위협을 가한다. 신자유주의 질서라 함은 노동이 불안정화되고, 빈곤이 여성화되고, 석유, 가스, 광물, 물과 같은 천연자원 추출을 위해 사람들을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제로 대다수 여성의 생명은 위험해졌다. 특히 역사적으로 배제된 원주민, 아프리카 후손, 농민, 도시빈민, 레즈비언, 트랜스 젠더와 트랜스 섹슈얼 3 여성, 즉 서양의 백인 부르주아지 여성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진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 상황 하에서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같이 진보적 정부가 들어선 국가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에서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권리 확대에 초점을 맞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건설을 제안했다. 활동가 히오꼰다 모따 4에 따르면,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반가부장적이며, 진정한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원주민, 아프리카계, 생태적, 성적, 젠더의 다양성, 학생과 노동자 투쟁과 함께하는 5” 대중적 여성주의 실천이 이루어졌다.

대중적 여성주의는 사회운동 진영이 역사적으로 억압받아온 모든 부문, 특히 생명까지 위협하는 문제에 직면하는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고 사회정의를 되찾기 위한 정치적 기치이다. 이러한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멕시코 : 국가가 성폭력과 페미사이드(여성살해)라는 범죄를 “용인”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침묵해온 멕시코 사회에 반격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백 개의 여성단체가 집결했다.

중앙아메리카 : 80년대 무력 충돌의 산물과 다른 국가로 강제 이주로 중앙아메리카는 여성에게 매우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선조부터 살던 영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온두라스의 생태주의자이자 원주민 여성인 베르따 까세레스 6와 같은 지도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남아메리카 : 이 지역에서 눈에 띄는 투쟁은 국가가 낙태 비범죄화와 같은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을 인정하게 만드는 투쟁, 불평등한 관계를 전환시키는 사회경제와 사회주의 경제 추진, 그리고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모델인 채굴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카리브해 섬 국가 :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럼에도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낙태를 완전히 합법화하고 여성의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 측면에서 매우 앞선 유일한 국가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시나리오는 특히 여성을 위협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폭력의 상태를 자아낸다. 여성의 몸 전반에 걸쳐서 여성의 재생산권과 민족-인종적, 사회 계급적 정체성이 연결되어 다양한 형태의 억압이 나타난다. 이러한 억압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을 생물학적 번식자, 가족과 공동체의 돌보미, 무급 노동자로 규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다수의 여성주의자는 이를 “삼중 착취(생물학적, 사회적, 경제적)”라고 부른다. 이러한 착취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대다수의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과 노동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지 못한다.

자본주의에 대항한 여성의 경제투쟁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자연을 착취했다. 이런 착취 과정을 발생시키는 주요한 경제, 사회, 지정학, 환경 문제는 바로 삼림, 정글, 초원과 바다에서 천연자원(금, 다이아몬드, 탄소, 목재, 물, 가스, 석유)을 얻기 위해 경제적 논리로 생겨난 채굴주의에서 기인한다.

현재 자본주의로 인해서, 특히나 초국적 기업이 있는 곳에서는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서는 경작 가능한 토지와 물,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어 원주민, 아프리카계, 농민 공동체가 도시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도시의 구조를 형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토론이 논의의 장에 재등장했다. 예를 들어, “비공식 경제”는 대부분 도시 빈민, 특히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이 가부장적이고 채굴주의적인 자본주의에서 물려받은 지위인 “가족과 공동체 돌봄의 재생산자”이기 때문이다.

노동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최악이다. 여전히 임금과 모성 인정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돌봄 노동은 국가 경제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돌봄 노동은 가족과 타인을 돌보는데 여성이 들이는 시간 7을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반으로서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을 무시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서 여성의 기여를 무시한다.

지난 10년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과거 “주부”라고 불린 가사 노동자가 경제적으로 인정받고, 사회보장이나 노동법과 같은 공적 체제에 포함되도록 하는 중요한 조직적인 노력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는 이런 노력의 최전선에 선 나라이다 (뒷부분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반면에 농촌 여성은 그들의 영토를 지키고 지역사회경제 형태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2016년 3월 3일 온두라스 원주민 지도자 베르따 까세레스는 정부가 암묵적 지지를 보낸 수력발전소 사업을 밀어붙인 기업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녀는 까세레스는 렌까 8원주민 공동체가 신성히 여기는 괄까르께 강 9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었던 수력발전소 사업을 중단시켰다.

“더 이상의 희생은 그만: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의 물결을 만들어 낸 주요 동인은 지난 2년 간 이 지역 전역에서 벌어진 여성살해 10이다. 여성살해를 통해 여성은 다른 사람, 즉 남편, 가족, 교회 또는 정부의 소유물로써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몸은 자신의 소유이지만, 실상 어떠한 형태로든 처분이 될 수 있는 대상이다. 사적 소유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상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토와 여성의 몸(특히 사회적 조건, 인종/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가장 빈곤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몸)에도 적용된다. 이 개념 때문에 여성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비롯해 많은 권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여성살해가 대다수의 여성이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고유한 문제로써 가시화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나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법 영역의 공공 시스템에 존재하는 차별 때문에 공식 통계는 많지 않지만, CEPAL에 따르면 2014년 한 해에만 라틴 아메리카 25개국에서 2,089명의 여성이 여성살해로 사망했다 11. 텔레수르 12는 여성살해율 상위 25개국 중 14개국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라고 보도했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의 여성살해율은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또한 높은 여성살해율을 보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내 여성살해 (출처 : www.infobae.com)]

가장 최근에 여성들이 집회에 나선 것은 과테말라의 국제 여성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진행된 행사였다. 40명의 소녀들이 보호자가 신체적, 심리적, 성적으로 자신들을 폭행했다고 비난한 것을 이유로 산 채로 갇혀 불에 타 숨졌다 13. 이와 같은 다중 여성살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법에서도 다루지 않고 무시하는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 기관을 비판하기 위한 새로운 슬로건이 되었다. 여성(특히 인종, 민족, 계급 때문에 법적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권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더 이상의 희생은 그만: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대중 집회와 지속적인 여성주의 활동가 캠페인이 형성되었다. 이 슬로건은 도시, 원주민, 아프리카계, 노동자, 농민, 학생, 예술가, 자발적 임신 중단의 비범죄화 및 합법화 찬성론자,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및 트랜스섹슈얼 여성 단체들이 결집하여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고, 이들은 현재 여성살해 사건을 다룰 때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성차별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난 사법 시스템의 구성을 포함하여 폭력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권을 획득하기 위해 공공 정치를 개선하고자 한다. 특히, 이는 여성살해를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자본주의와 연관된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포함된다.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정부로의 회귀하려는 위협과의 싸움

2015년 12월에 아르헨티나에서 보수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14 대통령이 당선되고,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15 대통령의 민주적 통치를 부인하는 국가로 회귀하려는 미셸 테메르 16 부통령이 실권을 잡으면서, 라틴 아메리카 경제의 주축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파라과이, 페루, 콜롬비아와 함께 CNN과 같은 민간 언론과 역내 기구(미주기구 17, 메르코수르 18 등)를 이용하여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니카라과, 쿠바 등 진보적 정부에 대한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선전을 전 대륙에 퍼뜨리고 있다. 특히, 이들의 공격은 베네수엘라를 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내적으로도 사회경제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국민들은 베네수엘라 기업이 기본 식료품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사유화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전쟁이 시작된 원인 중 하나는 생리대와 같은 여성용품과 여성들이 주로 구매하는 기저귀 품귀현상이다. 이 현상이 식료품으로까지 번졌다. 여성이 가정에서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책정한 “더욱 합리적인” 가격 19에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는 것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은 피임약(알약, 패치, 주사약)과 같은 의약품으로까지 확대되어, 약을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더라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큰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2010년 이후, 베네수엘라는 청소년(15~19세) 임신율이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가장 높았다. 여성주의 운동세력은 여성을 인정하고 여성을 위한 정치적 동등성을 확보하고, 노동 평등,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낙태 비범죄화, 성교육, 피임약에 대한 접근권)에 대한 권한부여의 정치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여성주의 건설을 주장한다. 이 외에도, 여성은 인구가 밀집한 동네나 시골 지역에서 공급과 생산 지역위원회(스페인어로 CLAP)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을 분배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공동체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경우, 은행가 출신 우파 후보 기예르모 라소 20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레닌 모레노 21는 국민의 삶, 특히 에콰도르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시민혁명(2007) 22은 모성과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 설립, 이주민 귀환을 위한 인센티브, 성평등을 위한 국가 위원회 창설, 사회보장 제도 내에서 가사일을 인정할 것, 대중 선거에서 정치적 정당의 선전 등을 통해 많은 여성의 삶을 존중하고자 했다. 현재 에콰도르 내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어젠다를 정리하여 새로운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하여 인구 밀집 지역 및 농촌지역에 사는 여성에게 특히 영향을 미칠 낙태의 범죄화 같은 여성에게 가장 위협적인 문제와 관련한 토론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3월에는 볼리비아 다민족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경우를 확대하는 법안 승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해당 법안은 성폭행, 근친상간, 어머니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외에도 태아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임신 여성이 여아 또는 청소년일 경우, 어머니가 극심한 빈곤에 처했을 경우에 임신 8주 미만일 때의 낙태를 허용하고자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여성의 몸에 대한 선택권과 관련하여 라틴 아메리카 대륙 차원에서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볼리비아의 대다수의 원주민 사회가 역사적으로 식민지주의와 종교적 생각을 강력하게 내포하고 있고, 여성이 사회정치적 참여를 요구하고 볼리비아 혁명에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사회적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법안의 통과는 특히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투쟁은 여성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 경제, 정치적 불평등은 수 세기에 걸친 식민지 시대와 자본주의의 착취의 산물이다. 민중의 투쟁은 분명히 이러한 불평등을 감소시켰지만, 국가와 사회의 계급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모델은 여전히 여성, 노동자, 농민의 삶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폭력에 맞서, 우리는 아래(전통적 공동체, 사람들, 영토)로부터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을 수호하는 것은 존엄성과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길을 수호하는 것이다.

주: 라틴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여성주의자와 여성 사회단체 간의 교류를 추구하기 위해, 많은 단체가 온라인 활동 전개하고 있으며, 본 글에서 제시되었던 모든 문제와 기타 동등한 권리에 대한 논의를 인터넷 상에서 이어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여성주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소개한다.

베네수엘라 – 페미니스트 스파이더: http://encuentrofeminista.weebly.com/
베네수엘라 – 혁명의 가슴: 생명의 안녕을 위한 단체들의 네트워크: https://tetasenrevolucion.wordpress.com/
에콰도르 –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 http://www.vivasnosqueremosec.tk/
에콰도르: 사회연구, 실천 및 참여 재단: http://www.fedaeps.org/
볼리비아 – 창조하는 여성: https://www.mujerescreando.org/
쿠바 – 쿠바는 가능하다: https://cubaposible.com/ultimos-apuntes-polemica-aborto-cuba/
과테말라: https://porunavidavivible.files.wordpress.com/2012/09/feminismos-comunitario-lorena-cabnal.pdf

Notes:

  1. María Emilia Durán García
  2.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운동은 차이가 있다. 모든 여성이 가부장제, 신식민지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기반한 지배에 대한 여성주의 정치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여성주의자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여성주의자는 “여성”을 여성이라는 젠더에 부여된 사회적 구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여성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배제된 여성을 포함하는 운동을 가리킨다.
  3.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과 자신이 느끼는 성이 다른 사람을 지칭한다. 이 중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을 트랜스 섹슈얼이라고 부른다.
  4. Gioconda Mota
  5. 모따 구띠에레스 엔 라쁘레아(Mota Gutiérrez en Laprea), 2014, http://www.albatv.org/Haciendo-feminismo-popular.htm 
  6. Berta Caceres
  7. 여성주의자 실비아 베르게르(Silvia Berger, 2014)는 여성주의 경제가 남성중심적이고 편파적인 경제를 폭로하고 비판하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하는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활동에 근본적으로 주목해 경제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한다. 시장(가정의 외부영역) 지향적 활동을 가사노동의 재생산, (무급) 돌봄과 자체 소비를 위한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여성의 노동이 철저히 가려진 가정 영역은 시장 외부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 사회의 안녕을 생산하는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여성의 중요한 측면을 숨긴다. 여성 노동을 거시경제 총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돌봄 노동을 사람들의 삶 및 사회적 조건을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여성을 경제주체로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권력과 젠더의 관계를 폭로한다.
  8. Lenca
  9. Gualcarque River
  10. 여성살해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성별 때문에 집, 가정 또는 공동체 내의 대인관계 등에서 타인에 의해, 또는 국가와 국가기관의 행동 또는 방관으로 인해 자행되거나 용인되는 여성의 살해를 의미한다.” CEPAL (Comisión Económic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 2016. 지속가능 개발 어젠다 내 여성의 자주성과 평등. http://repositorio.cepal.org/bitstream/handle/11362/40633/4/S1601248_es.pdf 
  11. Ibid (2016, 114).
  12.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살해”. TELESUR, 2016.7.5. http://www.telesurtv.net/telesuragenda/Feminicidio-en-America-Latina-20160705-0027.html
  13. 과테말라: 집에서 불에 타 숨진 소녀와 황폐화된 가족. TELESUR, 2017.3.19 http://www.telesurtv.net/news/Guatemala-desolacion-en-familias-de-ninas-quemadas-en-albergue-20170319-0021.html
  14. Mauricio Macri
  15. Dilma Rousseff
  16. Michel Temer
  17.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18. MERCOSUR
  19. 민간 슈퍼마켓에서 책정한 터무니없는 가격과 싸우기 위해 정부에서 합리적인 상품가를 책정했다.
  20. Guillermo Lasso
  21. Lenin Moreno
  22. Citizen’s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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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글: 로널드 콜린스(해외통신원, ISC)
번역: 예선희(번역팀, ISC) 황정은(사무국장, ISC)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휘권 하에 있는 미군은 전 세계적으로(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한반도 긴장 고조) 더욱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미국 내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떻게 미국이라는 제국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국가안보라는 미명아래 새롭게 이루어지는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군사력의 사용으로 인해  미국 시민들은 자신을 대신하여 이루어지는 조치가 다른 나라 국민들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애국심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특히 흑인 애국주의는 우리 1가 미국사회 내에서 억압받는 위치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억압한다는 깊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건국 이래로 흑인은 애국심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고심했으며, 이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했다. 결국, 흑인 애국자가 된다는 것은 과거에 목숨까지 바쳐가며 만들려고 했던 흑인이 배제 받지 않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며, 우리가 아무리 원해도 미국이 절대로 그러한 국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흑인 애국주의는 미국을 모든 시민을 위한 이상이 실현되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

흑인 애국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짐 크로우 시대 2 이래로 국가 안에서 흑인 사회가 식민지 취급을 당한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미 제국주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노예제 이후, 즉, 남북전쟁 직후의 국가 재건 시기에 실제로 흑인의 공직선거 출마가 가능했고, 국가 입법기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실, 남북전쟁 직후의 국가 재건 시기(1863~1877년)에는 미국 역사상 어느 때 보다 더 많은 흑인이 국가 입법기관에 진출했다. 하지만, 국가 재건이 시작되고 짐 크로우 법이 시행되면서 흑인은 정부기관에서 체계적으로 밀려났고, 모든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 년 동안, 각 주의 모든 시민을 대표해야 할 남부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은 짐 크로우 법을 통과시켰고, 흑인에 대한 린치(집단 공격)를 못 본 체 했으며, KKK 3와 같은 백인우월주의 단체가 미국 남부에서 활개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러한 문제가 1960년대에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민권 운동가들은 민주당 내에서 흑인 대표성이 미흡함을 강조하고 흑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독립적인 후보자를 확보하기 위해 미시시피 자유민주당(MFDP)을 창당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흑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정치 제도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미시시피 자유민주당이 후보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미국 정부의 시스템 내에서 흑인 애국주의가 가진 한계를 보여주었다. 미국 역사 전반에 걸쳐 흑인이 소속감을 느끼거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가지기 어려웠다는 것은 미국이 흑인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마커스 가비 4 같은 작가들은 우리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우리만의 사회를 세우고, 자치를 실현하며 충분한 존엄성이 보장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귀환을 위해 구매한) 땅에 거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콤 엑스 5와 같은 이들은 흑인 사회가 정치권력을 공고히 하고, 필요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우리가 미국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상들이 노예로 살았던 땅에서 자주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독립적인 흑인 국가를 현재의 미국 영토 내에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형태의 흑인 민족주의는 흑인을 인도적인 조건을 제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거권이 충분히 보장된 시민으로 보지 않는 국가에서 겪고 있는 현실에 대처하는 기제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다.

흑인 민족주의는 미국의 공식적인 민주주의와 통치 과정에서 흑인이 배제된 결과이다. 2008년이 되어서야 이러한 배제는 산산이 부서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의 역사와 투쟁을 공유한 사람이 미국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이는 흑인이 정부와 정책에서 더 이상 배제되지 않고 미국의 통치 조직과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평등한 조치를 이뤄냈다. 미국에서 이런 모든 진보가 이뤄지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티파티 운동으로 알려진 인종차별주의적 반발에 부딪혔다. 티파티 운동은 상원과 하원 내의 소수 극우파 의원들로 구성되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모든 정책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이 세력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부터 도널드 트럼프 뒤에 줄을 서서 트럼프가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그의 정책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반발에 대응하여, 흑인 사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적으로 대통령을 옹호했다. 과거에 대통령은 억압의 정점에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흑인 지식인, 정치인, 예술가들이 현재는 버락 오바마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는 흑인이 정부에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더 저항적인 새로운 애국심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오바마 대통령 선거가 흑인에게 온라인, 거리, 국회를 비롯해 싸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티파티의 인종차별주의에 절망하고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우리의 나라이기도 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았다.

현재 미국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티파티 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티파티 출신 의원이 선출될 수 있었던 사회이념이 도널드 트럼프가 통치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티파티는 미 공화당에서 극우파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공식 목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세우고 오바마 정부가 계승한 “신자유주의적 사회복지 국가”로서의 미국을 그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티파티는 버락 오바마를 케냐 출신의 무슬림이라고 비판했고, 그가 흑인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인다움”을 공격했으며, 남부에서 흑인 유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안에 지속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또한 티파티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6” 운동에 전례 없는 물리력 사용을 요구하며 경찰국가 활성화에 앞장섰다. 더구나 빈곤한 흑인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세금 삭감을 요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티파티는 사회서비스 축소, 부유층 세금 삭감과 국경 수비, 군비 지출, 군사 행동의 강화를 요구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을 하나의 비전으로 합쳐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7” 공약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바마 재임 기간 동안 다수의 흑인이 거리 시위, 정부에 직접 이슈 제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흑인 공동체는 법이 아니더라도 이전에 우리가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공격하거나 우회하려 한 공직자에게 책임을 물었다. 독립된 흑인의 미국을 요구하는 대신, 대다수의 흑인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흑인이 정부에 참여하고 소속되어야 할 때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로 보았다. 오바마 정부 하에서 흑인 애국주의와 미국에 대한 신뢰가 새로워졌고, 이는 인종차별주의적 티파티의 반발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으며, 티파티 운동의 힘과 성공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은 미국에서 소수자, 특히 흑인의 정치적 힘의 부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로 국가 수장이 바뀌면서 다수의 흑인은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반발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평가해야만 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미국의 통치 과정에 참여하는 흐름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 명확하며, 우리의 참여를 공고화하는 전략을 만드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현재 흑인 애국자들 앞에 놓인 과제는 미국이 모든 국민을 포용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흑인 민족주의가 완전한 평등함으로 가는 확실한 수단으로 유효한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대의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흑인 운동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의 법과 질서에 방해가 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지도자의 통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현재 트럼프 정권 하에서 흑인들은 오바마 정부 하에서 잠시나마 경험했던 미국 시민으로서의 소속감을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혁명적인 뿌리로 돌아가 흑인 국가를 위해 싸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미국에서 모든 시민들이 행복하고, 건강하며,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러한 국가를 만들려면, 우리는 흑인 애국자로서 이제까지는 없었던 흑인의 참여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미국 통치 구조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이러한 제도와 흑인 사회 간 관계의 본질을 바꿔야 한다. 현 제도가 이러한 평등한 참여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를 시민을 인정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될 것이다.

Notes:

  1. 본 기사는 필자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글에서 나타나는 ‘우리’라는 표현은 자신을 포함한 흑인(사회)을 말한다.
  2.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정책)
  3. Ku Klux Klan(쿠 클럭스 클랜)
  4. Marcus Garvey
  5. Malcolm X
  6. Black Lives Matter
  7. Make America Grea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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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글: 안드레아 슈니처(해외통신원, ISC)
번역: 황정은(사무국장, ISC)

4월 헝가리에서는 25년 만에 최대 규모 시위가 열렸다. 중도우파 정부가 통과시킨 비민주적인 법안에 반대한 저항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일말의 논의조차 없이 집권 연립여당은 외국 대학은 본국에도 캠퍼스가 있어야 하고, 양국 정부 간 협정이 있어야 하며, 초빙교수 계약이 있어야 한다는 법안을 지난 4월 4일에 통과시켰다. 2018년 1월까지 헝가리에서 유일하게 이중학위(미국과 헝가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이자 가장 명망 있는 유럽 중앙대학(CEU)은 뉴욕에 캠퍼스를 열어야 하지만, 연방정부가 아니라 뉴욕주정부에서 인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 정부와의 협정만으로는 이 조항을 이행할 수 없다. 결국 CEU는 운영을 중단하거나 불법운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법안 통과 후, 약 8만 명이 정부 결정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언론의 자유, 비정부 기구, 학문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연이은 공격에 자극받은 것이다.

필자가 2016년 8월 한국을 떠나 CEU 석사 학위 과정을 위해 헝가리에 온 데에는 미국 학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대학원에서 누릴 수 있었던 새로운 기회들도 만족스러웠다. 필자가 한 B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중으로 참가했을 당시, CEU 졸업생이자 정부 대변인인 졸탄 코바츠 1는 정부가 비정부기구를 위협한 것과 언론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비난에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단호하고 전투적인 태도로 부인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신문사가 정부의 부패 스캔들을 보도한 이후 폐쇄되었다. 국영 언론사는 이 신문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신문사 폐쇄를 보도했다. 이렇게 성급하게 폐쇄한 것은 기본노동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눈에 띄었다. 또한, 해당 신문사가 신규 직원을 채용했기 때문에 갑자기 폐쇄한 이유에 대해 더욱 의심이 갔다. 신문사의 어려운 재무 상태를 탓하는 것은 2015년 정부 지시로 재정 구조조정을 했던 데에서 문제가 기인했다는 사실을 가려버렸다. 폐쇄 이후, 신문사가 수십 년간 쌓아온 기록을 인터넷 상에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음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정부 전략을 이야기했다. 조세 당국과 경찰은 비정부기구 사무실을 불시에 방문해 단체의 합법성을 증명할 문서를 요구했다. 특히 정부는 사회 정의, 소수자 권리, 투명성과 반부패와 관련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를 목표물로 삼으며 외세의 간섭을 뿌리 뽑기 위한 것으로 정부 행동을 정당화했다. 정부가 이런 단체에 자금 지원을 하지 않아 유럽연합, 노르웨이, 조지 소로스 2가 설립한 열린사회연구소 3에서 지원하는 자금에 의존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비정부기구는 외국 자금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이고 국가주의적 어젠다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집권 연립여당은 비정부기구 블랙리스트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4월 초, 국회의원들은 의회에 이중 국적 학위를 주는 학교(CEU)를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대학에 부담이 되는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거나 학교를 헝가리에서 추방할 것에 관한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친정부 성향의 매체에서 갑자기 대학의 합법성에 대한 소문과 빅토르 오르반 4 헝가리 총리의 근거 없는 비난이 등장했다. 신문사와 비정부기구에 자행되었던 것과 비슷한 공격이 헝가리 최고의 대학에 가해진 것이다.

그 누구도 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헝가리인 친구도 집권여당의 가식이며 기반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루하루 갈 수록 대학 설립자인 조지 소로스에 대한 언급은 점점 거세지고 그를 향한 비난은 늘어갔다. 소로스는 지난 20년간 대학 운영에 대한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그는 대학 내 학자, 1,800여 명의 석박사 학생을 그의 생각으로 “세뇌”시키는 “기만적인 지도자”였다. 나치가 헝가리를 점령한 시대에서 살아남은 부다페스트 출신의 유대인 소로스는 금융시장 기법을 이용해 잉글랜드 은행을 파산시켰고, 그렇게 벌어들인 수백만 달러를 민주주의와 열린 사회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사용했다. 집권 여당의 최고 수뇌부는 이민에서부터 헝가리 대학이 상대적으로 하위권 대학이라는 이유로 소로스를 목표물로 잡았다. 오르반 총리의 반유대주의 수사와 우파 지지를 모으기 위한 다른 권위주의적 지도자 사이에 충격적인 역사적 유사성이 보인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 학생들은 학문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했다. 4월 8일, 필자 또한 학문의 자유를 위해 열린 8만여 명의 시위에 참가했다. 25년 만에 열린 최대 규모 시위였다.

이번 시위의 주요 주최자이며 정치과학을 전공하는 헝가리인 대학원생인 레호타이 5는 이 상황에서 시위의 역할에 대해서 “정부는 거리에 나선 8만 명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논했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청년들이 많다. 이전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음을 보여준다”고 레호타이는 덧붙였다.

블루컬러 노동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학자 모두가 모여 행진했다. 참가자 수가 많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열기를 누르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 같았다.

“항상 시위를 해야 하는 새로운 이유가 생긴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모여야 한다. 그리고 학문의 자유, 시민단체를 위해 모여야 한다. 정부는 우리가 지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레호타이는 말했다.

이번 시위는 헝가리인들이 조직하고 참여했지만, 집권여당 의원들은 단순히 시위대의 목소리를 묵살하며 소로스에게서 돈을 받은 외국인이라고 말한다.

레호타이가 법에 따라 경찰 당국에 8만 명의 집회 신고를 한 후, 집회 당일 아침에 경찰이 그녀의 아파트에 나타났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주위를 돌고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 물었다. 그가 건물의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 경찰차 여러 대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이틀 정도 집에서 잘 수 없었다. 시위대 맨 앞에 있어서 사진에 많이 찍혔던 또 다른 집회 주최자의 말을 들어보니, 경찰이 찾아와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한다. 경찰이 창문으로는 여권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현관문을 열고 여권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법적으로 경찰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을 허용한 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경찰은 집 안을 수색할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레호타이는 설명했다.

레호타이와 다른 집회 주최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듣고 필자는 충격을 받았고 두려워졌다. 그 주에 대학원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해 배웠던 것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결국 경찰은 나와 다른 학생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몰랐다는 발표를 했다”고 레호타이는 덧붙였다.

1997년부터 CEU에서 법학과 교수로 재직한 레홋스키 6 교수는 12년 간 유럽사회권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전(前) CEU 법학부 학장이다. 레홋스키 교수는 헝가리 역사와 법률과 관련된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레홋스키 교수는 두 명의 헝가리 초등학교 아이가 경찰관과 히잡 7을 쓰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역할을 맡아 역할극 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역할극 대본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준 것이었다. 경찰 역할을 맡은 남자아이는 시리아 난민 역할을 하는 여자아이에게 감옥으로 보내버리겠다며 위협했고, 이후 경찰은 자신에게 내민 한 뭉치의 돈을 받기로 결정한다. 역할극의 마지막은 두 명이 함께 춤을 추는 것이었다. 레홋스키 교수는 이 영상이 “비인간성, 탐욕, 증오를 주입시키는” 정부의 정책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충격을 받는다. 오르반 총리의 주요 전략은 적을 색출하고 이들과 싸우는 것에 기반한다. 이것이 헝가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공공의 적이 없으면 항상 우리끼리 싸운다”고 레홋스키 교수는 설명한다.

레홋스키 교수는 정부가 반대의 목소리를 진압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른 대학이 CEU를 지지하면 그들의 지원금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수들이 아무런 말도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항상 정부를 지지했던 일부 고위급 학자들이 놀랍게도 용기 있는 선언과 반박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미셸 푸코 8가 설명했듯이 우리는 간수가 없어도 되는 원형 교도소에 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입과 눈을 닫고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수용하는 곳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비문명화’되고 시민단체는 약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전술은 헝가리 역사를 보았을 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 정권은 권위주의적인 공산주의 정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1950년대 나는 어린 아이였다. 그 때의 반지성주의를 기억한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지식인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하위 계급이자 서구 자본주의자와 이전 정권의 숨은 스파이로 낙인 찍혔다. 1950년대에 국제 금권정치의 음모로부터 비롯되었던 반서구 선전 슬로건이 현재의 헝가리에서 다시금 대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움직임을 보는 게 쉽지 않다”고 레홋스키 교수는 말한다.  

정부의 수사는 분열을 조장한다. 여름 내내 보였던 반이민 선전물과 유사한 “브뤼셀을 막자”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대중교통수단, 도로 광고판, 그리고 정부 간행물에 게시되었다. “정부가 반유럽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 정부는 유럽연합이 헝가리를 식민지화하고 주권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고 레홋스키 교수는 설명한다. 사실 “오르반 총리는 의사결정기구의 일원으로 유럽연합의 조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심지어 이를 차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르반 총리는 국민들이 유럽에 등을 돌리도록 선동하는 것을 택했다.”

레홋스키 교수는 현재 민주주의가 결여된 상황에 대해 비관적이다. 오히려 헝가리 정부에 대한 유럽과 국제 사회의 비판에서 희망을 본다.

“현재 전세계가 CEU를 알고 있다. 국제사회가 나서길 바란다. 정의, 인간애, 자유 이 세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가치가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레홋스키 교수가 말했다.

그 순간 내가 선택한 대학원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다. 교수진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150여개 국가 출신의 학생들은 다양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풍부하게 토론한다. 그리고 CEU는 현재 헝가리 최고의 도서관인 학교 도서관을 다른 대학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CEU는 한 때 헝가리에서 존경 받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소로스는 1988년 헝가리의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을 지원하고 열린사회연구소와 대학을 세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점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고 레홋스키 교수가 말했다. “헝가리인들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공산주의 하에서 전형적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이었다. 몇 번의 혁명을 제외하고 우리는 ‘문명화’하는 시기를 갖지 못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충분히 자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야 한다.”

굳게 닫힌 국경으로 둘러싸인 헝가리에서 학문의 자유가 살아남으려면 레홋타이와 같은 활동가들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어려운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미래는 여기에 달렸다.

Notes:

  1. Zoltán Kovács
  2. George Soros
  3. Open Society Foundation
  4. Viktor Orbán
  5. Orsolya Lehotai
  6. Csilla Kollonay-Lehoczky
  7. 원문에서는 헤드 스카프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무슬림 여성이 쓰고 있는 히잡을 의미한 것임.
  8. Michel Fouc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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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정성미(국제팀, ISC)

* 본 기사는 Le Monde의 “Emmanuel Macron et Marine Le Pen, deux programmes que presque tout oppose, Adrien Sénécat, Eléa Pommiers, Gary Dagorn (http://www.lemonde.fr/les-decodeurs/article/2017/04/23/emmanuel-macron-et-marine-le-pen-deux-programmes-que-presque-tout-oppose_5116067_4355770.html)”를 번역한 글입니다

유럽, 복지, 사회, 환경, 러시아 ……. 대통령 선거 결선에 오른 두 후보의 정책에 나타난 주요 차이점을 개괄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입소스-소프라 스테리아 1가 프랑스 텔레비전, 라디오 프랑스, 르몽드의 의뢰에 따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앙마르슈! 2의 대표인 에마뉘엘 마크롱과 국민전선 3의 대표인 마린 르펜, 두 후보가 대통령 선거 결선에 오른다. 두 후보는 선거운동을 통해 서로 상반되는 프랑스의 미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른 정책을 제시했다. 주제별로 간단히 살펴보자.

◈ 경제: 세부사항이 다른 두 개의 자유주의 정책

차이점을 살펴보면, 전(前) 경제장관(마크롱)은 노동법 유지를 바라는 반면 국민전선의 후보는 노동법을 다시 손보고 싶어 한다. 공공지출의 측면에서 보면 마크롱은 공무원 수를 12만 명 줄이는 것이 포함된 600억 유로의 삭감 계획을 가지고 있다. 르펜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재정 적자를 감소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국가 의료보조, 유럽연합에서의 프랑스 분담금, 탈세, 복지 사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르펜과 마크롱의 경제정책은 몇 가지 공통점도 있는데, 세부 사항에서 차이가 난다. 두 사람 모두 사회보장 분담금과 고용자 부담금을 줄이고,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거나 없애려고 하며, 주민세를 동결시키거나 폐지하려고 한다. 엘리제궁을 목표로 하는 두 사람은 부가가치세나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법인세를 삭감하려고 한다. 그들은 노동의 ‘우버화 4’를 규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공공계약을 할 때 르펜은 프랑스 기업만을, 마크롱은 프랑스 기업과 유럽 기업 모두를 우대하고자 한다.

◈ 복지: 프랑스인을 우대하려는 르펜과 본질적인 개혁을 원하는 마크롱

두 후보는 복지제도의 개혁과 관련하여 우선순위를 다르게 정하고 있다. 르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보조금을 삭감하고 프랑스인들을 위한 사회보호 혜택을 마련하는 것이다. 르펜은 (구매력 특별수당을 통해) ‘프랑스인’, 특히 퇴직자와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회복시키기를’ 원한다. 그녀는 실업자를 위한 정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법적 연령을 낮추거나 노령자 최저소득 보장 제도를 실시하는 등의 퇴직자를 위한 개혁을 실시하고자 한다.

마크롱은 실업보험과 퇴직연금의 근본적인 개혁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는 노사(勞使) 어느 쪽도 아닌 국가에 의해서 관리되는 보편적인 실업 보호제도를 만들기를 원한다. 이 제도에서는 직장을 떠날 경우 법적 자격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두 번 거절한 경우에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퇴직자들을 위해서도 그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독특한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두 후보의 정책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치과 치료, 인공보청기 등과 같은) 비싼 의료비를 최대한 상환해 주는 것이다.

◈ 유럽: ‘프렉시트’ 대(對) ‘새로운 유럽 관련 법안’

이 문제에서는 두 후보가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우선, 르펜은 선거운동에서 유로와 유럽연합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그녀는 이를 위해 프랑스인들에게 유럽연합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있다.

반면에 마크롱은 1차 투표를 위한 선거운동 기간 동안 11명의 후보 중에 가장 친 유럽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유로 지역을 위한 예산, 의회, 경제 장관을 만들기를 원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새로운 유럽 관련 법안을 만들기 위하여 시민 회의를 개최할 것을 주장하면서 반(反)유럽 담론이 대두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 사회적인 논쟁점: 보수적인 르펜과 좀 더 자유주의적인 마크롱

모든 여성들에게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마크롱의 정책은 눈길을 끄는 것이 없다.

르펜은 이 분야에서 보수적 입장을 크게 내세우지는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민전선의 노선 안에 머물러 있다. 임신중절과 관련한 논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2012년에 그녀는 ‘낙태’에 반대한다고 말했고, 현재는 낙태가 ‘널리 퍼지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결혼에 관한 토비라 법 5에 반대하며, ‘개선된 시민연대조약 6’을 선호한다.

◈ 국가 정체성: 열린 프랑스 대(對) ‘국수주의’

이 지점에서 두 후보의 차이는 분명하다. 르펜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세, 속지주의 폐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보조금의 조정이나 폐지와 같은 정책으로 표현되는 ‘국수주의’라는 개념 위에 자신의 정책을 세웠다. 그녀에게 이민은 프랑스가 경계해야 하는 위험요소이다. 이것이 그녀가 (현재 20만 명인) 프랑스 입국자를 1만 명으로 줄이겠다고 하는 이유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외국인을 받아들임으로써 변질된 ‘프랑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다.

반대로 마크롱은 ‘프랑스의 가치에 충실하면서 열린’ 프랑스를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가 보기에 프랑스는 난민을 받아들이고,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한다.’ 마크롱은 이민, 특히 외국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회와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는 관련된 현행법을 수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외국인들과의 최선의 통합을 바라고 있다.

◈ 정치 제도: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세부사항의 차이

르펜은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하되 중임을 금지하는 것으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그녀는 최소 50만 유권자의 제안으로 국민 투표를 실시하고 하원과 상원의 의원 수를 줄이는 것을 원한다. 또한 그녀는 다양한 여러 선거에서 비례 투표를 하는 것을 바란다. 마크롱도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몇 가지 개혁안을 제안하고 있다. 겸직 금지, 국가수반이 의회에서 1년에 한번 실시하는 국가 및 유럽 차원에서의 종합 평가, 국회의원 임기 동안 기업 고문 활동 금지, 모든 선출직과 장관의 가족 채용 금지 등이 그에 해당된다.

또한 마크롱은 상원과 하원의 1/3을 줄이고,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데 소요되는 개월 수를 제한하여 나머지 시간에는 정부의 활동을 평가하고 통제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정치 제도의 기능을 개선시키려 한다.

◈ 환경: 좀 더 ‘녹색’을 띠는 마크롱

환경문제에 대하여 마크롱은 프랑스 앵수미즈 7의 장-뤽 멜랑숑이나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8에 비해 후퇴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연료 문제에 있어서 디젤 차량에 대한 과세, 오염이 적은 차량 구입을 위한 1000 유로의 보조금 신설, 5년 임기 동안 모든 화력발전소의 폐쇄와 같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르펜의 환경 관련 정책은 동물의 권리 보호와 지역 생산품의 보호라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목할 점은 마크롱이 페센하임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고, 2025년까지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의 50%를 감소하고자 한다면, 두 후보가 탈핵에 같은 입장인 것은 아니다.

◈ 외교 정책: 러시아로 인한 차이

르펜은 친러시아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증거로 3월 말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을 들 수 있다. 그녀는 또한 IS와의 싸움에서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평가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마크롱은 선거 기간 동안 브누아 아몽과 함께 러시아와의 협력에 반대한 소수의 후보 중 하나였다. 그는 유럽이 ‘러시아와 사이 좋게 지내야’ 하지만, ‘민스크 협정 9이 지켜지지 않는 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제재를 존중해야 한다고 평했다.

Notes:

  1. Ipsos-Sopra Steria, 여론조사 정당
  2. En marche! 전진! 마크롱이 창당한 정당
  3. Front national. 마린 르펜의 소속 정당
  4. ubérisation. 우버화는 온라인 및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하여 전문 중개인 없이 수요자의 요청에 공급자가 직접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활동이 확산되는 현상을 뜻한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하여 기존의 택시 대신 일반인이 운전하는 자가용 차량과 승객을 연결해 주는 택시 연결 서비스 우버(Uber)에서 나온 말이다.
  5. loi Taubira. 2013년 제정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
  6. Pacte civil de solidarité. 프랑스에서 동성이나 이성 커플이 함께 살기 위해 맺는 계약이다. 결혼에 비해 권리와 의무가 적고 계약의 체결과 해지가 간편하다.
  7. La France insoumise. 이번 대선에 나선 극좌 정당 연대로 장-뤽 멜랑숑(Jean-Luc Mélenchon)이 후보로 나섰으나 1차 투표에서 4위에 머물러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8. Benoît Hamon. 사회당 대선 후보. 1차 투표에서 5위에 머물러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9. 우크라이나 사태를 끝내기 위해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합의된 휴전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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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홍정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사회주의자 재건을 위한 국제저널 링크스(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의 “Marta Harnecker: ‘Nobody can deny that a new revolutionary subject has been created in Venezuela’ (http://links.org.au/marta-harnecker-marx-capital-venezuela-brazil)”를 번역한 글입니다.

다음은 마르타 하네커가 2017년 1월 14일과 15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회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150년 : 21세기를 위한 고찰”에 참가하기 전에 그리스 신문사 에파이머리다 톤 신탁톤 1의 타쏘스 사커로글로우 2 기자와 가진 인터뷰이다. 링크스에서 영어 인터뷰 원본을 볼 수 있다.

당신은 마르크스 이론 체계의 실제에 관한 회의 차 그리스를 방문할 것이다. 심각한 국제 금융 위기 속에서 우리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발전과 관련해서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견한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중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는 소수에게 오늘날의 초국적 기업처럼 소수에게 더 많은 부가 점점 더 집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전반적인 생산 과정과 특히 토양 착취(자동 기계 장치와 유전자 변형 농업)에 과학을 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 세계 시장이라는 그물망에 얽히고설킨 사람들, 그리고 이것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성(세계화) 등을 이야기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리를 꿰뚫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에게 해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려고 했다.

우리는 이론적 추상화 객체로써의 자본주의 생산 방식 연구와 사회 형성과 그에 따른 계급투쟁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 연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150년 동안 현실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많은 라틴 아메리카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서로 다른 차원의 추상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마르크스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우리 현실을 고전적 개념에 끼워 맞추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매개 변수를 벗어난 지역에서 일어났던 새로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관한 이벤트를 통해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또한, 이 새로운 현상이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것이다.

마르크스 시대와 비교했을 때 현재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세계의 산업 노동 계급의 상황,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이다. 거대한 노동 계급이 모인 곳에서 대규모 노동자 집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대체로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하도급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조치의 이행과 노동 계급을 내부에서부터 분열시키는 사회적 분열 책동 전략 때문이다.

산업 노동 계급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정당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적 사회 주체의 구체적인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오랫동안 라틴 아메리카 혁명에서 원주민과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인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99%와 1% 간의 분열과 불평등 확대로 수십 년 동안 사장되었던 계급투쟁의 개념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좌파는 이 현실을 제대로 이용도 못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정교하게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계급투쟁 개념이 죽었는가, 아니면 이를 공유한 사람들이 역사발전 단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계급투쟁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 평온한 시절도 있지만, 억압받는 많은 사회 계층이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하는 시기도 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거대한 물결을 목격한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이 현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좌파의 무능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일반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신자유주의와 그로 인한 굶주림과 불행의 확대,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부의 분배, 환경 파괴, 주권의 상실 증가와 같은 공포로 사람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항도 하고, 더 나아가 반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공세를 취했다.

이 지역에 새로운 힘의 상관관계가 형성되어 미국은 이 지역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미국은 우리의 전진을 멈추려는 의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 세계 자본주의 위기, 특히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큰 경제적 난관을 이용하여 작년에 몇 가지 중요한 일시적 성공을 거뒀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초 신자유주의 통치자를 내세워 베네수엘라에서의 볼리바르 혁명의 완수를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에 다소 난관이 있다고 해서 우고 차베스 3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물려받은 라틴아메리카와 그가 남긴 라틴아메리카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몬 로드리게스 4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 온” 진보 국가 중 일부에서 매우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주제에 관련해서 발표할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볼리비아, 니카라과, 에콰도르는 좌파가 통치하고 있으면서도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이다. 이들은 중요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당신은 많은 저서에서 자본주의의 대안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여러 진보적인 라틴 아메리카 정부의 궤적을 살펴보고 있다. 이 실천 과정 특히,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 이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우선, 브라질 룰라 5 및 지우마 6 정부 시절에 일어난 일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을 구분해야 한다. 두 나라 모두 사회 평등, 정치 민주화, 국가 주권, 지역 통합을 위한 투쟁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브라질의 세력 간 상관관계는 진보적 헌법을 제정한 베네수엘라와 달리 제도권 법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브라질 노동자당(PT) 정부가 사회 문제를 강조했지만 신자유주의 의제를 깰 수는 없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부는 자본주의의 대안인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가 변혁을 필두로 해야만 했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로 차베스는 제도권 법률을 바꿨다. 그 결과 민중의 주체성이 필수적인 새로운 헌법이 탄생했다.

민중이 주체적으로 나서야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제안했다는 점은 차베스의 계획이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이고 국민들은 단순히 혜택만을 받는 수동적인 기존 사회주의적 경험과 대비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브라질의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인 ‘볼사 파밀리아 7‘를 예로 들어보자. 수백만 명의 가난한 가족들이 정부에서 주는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았다. 일단 기본 욕구가 해결되자 새로운 요구가 대두되었지만, 정부는 유가 하락으로 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야당은 이 상황을 이용하여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고 궁극적으로는 의회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제도적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차베스 정부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차베스는 사회주의는 위에서 명령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민중을 조직했다. 즉, 공동체 평의회, 노동자 평의회, 코뮌 등 다양한 논의기구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요구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정부와 함께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거지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 부문이 차베스와 오늘날 후계자 마두로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차베스가 뿌려놓은 씨앗은 대중 부문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내가 베네수엘라에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인간으로서 자존감의 높이고 성숙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생각하고, 참여하고, 설립하고, 결정할 기회를 얻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 과정을 지지하고 나설 것이라고 믿는다.

이 과정에 과오를 저지를 수도 있고 많은 약점이 있을 수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새로운 혁명 주체가 출현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이 혼란한 경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차베스의 사망으로 인한 엄청난 리더십 공백을 틈타 국내외에서 볼리바르 혁명 과정에 대한 공격이 점차 확대되었다. 차베스의 유산을 계승하려고 노력하는 마두로에 대한 또 다른 쿠데타 시도가 매우 어렵게 되자 야당은 이전에 시작된 경제 전쟁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차베스가 14년 동안 받았던 수준의 공격을 마두로 정부는 출범 3년 만에 다 받았다. 이러한 공격의 목적 중 하나는 2003년부터 미션 메르칼 8을 통해 식량권 보장에 기여한 기본 식료품 보조금 지급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칠레에서 달러화 암시장, 특정 산업 마비, 외국인 투자자와 현지 기업인들에 사이에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고의적 시도와 국제적으로 파산 국가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켜 살바도르 아옌데 9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려 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베네수엘라 경제학자 파스퀄리나 쿠르시오 10에 따르면, 국민들의 불만을 조장하기 위해서 인플레이션 유발과 불균형 조작이라는 두 가지 주요 전략을 베네수엘라에 적용하였다. 한편으로는 암거래 시장과 불법 시장에서의 환율 조작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선거 이전 수개월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위적으로 필수품을 부족하게 만들기 위해 사재기와 국경을 통한 밀수입으로 유통 방식을 조작하였다.

독점 기업과 은행가는 상품을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해외에서 물건을 사서 국내에 판매하여 대규모의 이익을 창출하고, 그들이 수입한 상품(기본 필수품, 그중 식료품과 생산과 운송에 필요한 품목)의 가격을 독과점 식으로 정하고 실제 통화 가치보다 훨씬 높은 비공식 환율(14.5배)을 사용한다.

필수품 가격의 상승이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해를 끼치지만 일용품을 생산하는 부르주아지 부문에도 해가 된다.

또한, 대중의 불만을 조장하기 위해 이들은 정기적으로 적당한 때를 선택해서 상점 선반에 필수 품목을 충분하게 채워 넣지 않고 일부러 부족한 상태로 내버려둔다.

이러한 공격은 급격한 유가 하락뿐만 아니라 정부가 부실한 경제 정책 채택으로 인해 유가의 하락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전개되었다. 게다가 국가 생산을 저해하고 수입에 점점 의존하게 만든 방대한 수입 친화 정책과 환율 정책이라는 토대 위에서 공격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부르주아지와 부패한 관료 체계가 실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마두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이러한 객관적 상황을 이용하고 있음을 어느 누구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베네수엘라의 오늘날 경제 위기가 차베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 구축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온도가 높아서 타버린 파이에 대해 요리법이 잘못되었다고 비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부가 잘하지 못했던 점과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을 진지하게 분석해야 한다.

최근 소식들은 긍정적이다. 최근 베네수엘라 정부는 석유 가격을 높이기 위한 광범위한 국제 협정에서 쾌거를 거두었다. 또한 이 국가적 노력에 참여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하고자 하는 모든 민간 산업 부문을 소집하여 국내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패한 관료주의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닌가? 보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진영을 넓혀가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보수 세력에 대항해왔기 때문에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보수는 지키지도 않을 약속들로 민중을 속이지만 이러한 사기와 기만은 현실과 상충되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다.

역사는 우리 편이다. 보수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유리한 이유는 우리가 제안해서 세우려는 사회가 객관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이익에 부합하고, 보수는 그저 지배층의 이익만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계획이 있는데도 왜 이것이 사회와 선거에서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가?

주로 보수가 미디어를 이용하여 우리 계획을 왜곡해서 유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 왜곡에 책임이 있다. 우리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계획의 실질적 측면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이 우리 계획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행동은 독재적이며,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사회 건설을 원하면서 우리 자신은 이기적이다. 또한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 우리는 소비주의자이다.

 

Notes:

  1. Efimerida Ton Syntakton
  2. Tassos Tsakiroglou
  3. Hugo Chavez
  4. Simón Rodríguez
  5. Lula
  6. Dilma
  7. Bolsa Familia
  8. Mission Mercal
  9. Salvador Allende
  10. Pasqualina Cur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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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허석렬(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ISC 자문위원)

지난 3월 5일은 볼리바르 혁명에 불을 지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서거한 4주기 기념일이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4주기 기념일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벌이면서 민중과 함께 혁명의 지속을 다짐하였다.

그 기념행사 중 하나는 볼리바르 혁명을 지지하는 해외인사들을 초청하여 세계각지의 사회운동과 볼리바르 혁명운동의 연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국주의 기업 미디어의 왜곡보도에 반대하고 인간해방적 관점에서 볼리바르 혁명운동의 현 상황을 보도하는 대안적인 언론 네트워크와 지식인 네트워크의 형성, 아메리카를위한볼리바르동맹(ALBA) 국가들 사이의 민중적 연대를 통한 볼리바르 혁명의 지원 등의 주제로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초청된 인사들은 “ALBA 운동 대표단”에 소속되었고, 다른 지역에서 초청된 인사들은 지식인 네트워크와 외교관련 특별 초청단, 사회운동관련 초청단에 속하였다. 이 세 그룹은 한편으로는 각각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모든 초청인사들이 같이 참여하는 행사도 같이 진행하였다.

3월 5일 초청단은 모두 국립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차베스 추도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민중이 만든 군인”이라는 주제로 국제 초청단과 조국 블록이 같이 야외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가하였는데 차베스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회고를 러시아, 쿠바, 콜롬비아, 베트남 대표가 발표하였고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민중으로 구성된 청중들은 중간 중간에 “차베스 만세! 혁명은 계속된다!”를 연호하면서 고 차베스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갈 것을 맹세하였다.

이어 국립역사기념관 한 가운데 안치된 차베스 대통령의 묘에서 종교행사를 포함한 차베스 대통령 추도식이 거행되었고 참석자들은 모두 헌화하고 석관을 만지면서 애도하였다.

6일 세 그룹은 각각 포럼을 진행하였는데, 필자는 지식인 네트워크가 진행한 포럼에 참가하였다. “해방적 커뮤니케이션인가 식민지화한 조국인가?” 포럼은 외교부 장관 공관인 까사 아마리야의 안또니오 호세 데 수크레 실에서 6일과 7일 양일간 열렸다.

특히 6일 저녁, 마두로 대통령은 테레사 까레노 극장에서 열린 지식인 네트워크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전세계적으로 외국인 혐오증과 네오 나치 운동이 부활하고 있지만 사회운동 역시 그런 경향에 맞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점에서 희망을 본다고 하였다. 마두로 대통령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오늘날처럼 진보적, 사회주의적 운동이 반동적 경향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우리가 다극적이고 다중심적인 민주적 세계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최근 카라카스에서 열렸던 비동맹운동 가맹국 정상회의에서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해 서로 다른 문화간, 다른 지역 간의 대화를 제의하였다고 말하였다.

마두로 대통령은 21세기 들어서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된 거대한 진보의 파동이 지나간 후 이제 아르헨티나의 마끄리와 브라질의 테메르 등이 주도하는 반동적 흐름이 라틴아메리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는 제1의 물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제2의 해방의 물결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나타내었다.

3월 7일 오후에는 전체 초청인과 “조국 블록”이 같이 대통령 관저인 미라플로레스 궁에서 마두로 대통령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아이사미 부통령과 문화부 장관도 참석하였으며, 차베스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어린이들의 공연이 있었고 초청단을 환영하는 마두로 대통령의 환영사가 있었다.

이번 방문을 통하여 각국에서 참가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온 활동가는 시리아 전쟁과 미디어 전쟁에 대해 자신들의 조직이 낸 책을 주면서 교류를 제안하였다.

6일과 7일 간에 걸쳐 진행된 지식인 네트워크 포럼(해방적 언론인가, 식민지화한 조국인가?)에서는 베네수엘라 측 발표자와 해외초청인사의 발제가 있었고 참가한 청중석에서 현재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적 기업 미디어의 왜곡 보도와 그 극복 방안에 대한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이 네트워크는 올해 15차 포럼을 차베스대통령 4주기에 맞춰 개최하였는데, 정식 명칭은 “인간성 수호를 위한 지식인과 예술가 네트워크”이다.

6일날 포럼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선언문이 채택되었으며 그 선언문을 중심으로 7일에는 여러 참가자들 사이에서 자유토론이 진행되었다. 그 선언문에서 참가자들은 베네수엘라의 국제적 권리를 억압하고 정당한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국제적 음모에 대해 경고하였다.

칠레 상원의원인 한 참가자가 선언문을 낭독하였는데, 그 선언문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사형집행인 노릇을 하고 있는 미주기구(OAS) 사무국장을 비난하면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거짓 뉴스에 맞설 것을 호소하였다. 그 가짜 뉴스의 목적은 베네수엘라 현 대통령인 마두로를 직위에서 끌어내림으로써 볼리바르 혁명을 좌절시키려는 국제적 우익의 일관된 기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가짜뉴스에 맞서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분석하고 보도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문은 주장한다.

7일의 토론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어떻게 대안적 케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략들이 참가자들 사이에서 토론되었다. 특히 신기술을 이용한 정보조작에 대항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논의되었으며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그들 나라에서 베네수엘라와 볼리바르 혁명에 대한 보도의 실상과 그것에 맞서기 위한 지식인들의 노력을 소개하였다.

6일날 오전에는 다른 포럼인 “대중운동 조직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준비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그 포럼이 열린 극장에는 “조국 블록”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채웠고 각국의 사회운동 조직에서 온 대표자들 중 베트남, 인도, 콜롬비아, 칠레, 스페인 대표가 볼리바르 혁명운동을 지원하고 자국의 대중들에게 베네수엘라 인민의 투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운동의 현황에 대해 발표하였다.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간간히 객석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혁명의 수호를 위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No Volveran(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을 외치는 민중들의 표정에서 어렵게 달성한 혁명을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8일 문화부 차관 주재로 조찬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베네수엘라의 현 상황에 대한 많은 질의와 각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베네수엘라 민중과 볼리바르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명깊었던 것은 이번 초청단 중에 팔레스타인 쪽 참가자들이 많이 참가하였는데, 그들은 베네수엘라에 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나라 중 하나가 베네수엘라이다. 역시 볼리바르 혁명은 가장 핍박받는 민중과 함께 하는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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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글: 송대한(The 숲 편집장)
번역: 심태은(The 숲 한글본 편집장)

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한 것은 2013년 3월 5일이다. 그의 사망 4주기를 맞아, 베네수엘라에서는 3월 4일부터 15일까지 추모식, 포럼 및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1992년 2월에 고 차베스 대통령이 실패로 돌아간 군사 쿠데타(1989년에 일어난 민중 폭동 “카라카소”를 탄압하는 정부에 반발로 촉발됨)를 일으켰을 당시 본부 역할을 했던 카라카스 군사학교(마운틴 바락)에서 추모행사가 시작되었다. 이 군사학교는 현재 차베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추모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추모관련 행사는 3월 15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추모행사는 고 차베스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기념하기도 했지만, 그가 1999년에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을 당시 내세웠던 정치, 경제 혁명에 대한 의식을 다시금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와 전 세계의 지식인, 활동가, 정부 대표단은 추모식뿐만 아니라 볼리바리안 혁명에 연대를 표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전파하는 외신과 투쟁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도출하고자 하는 포럼과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전 세계가 함께 볼리바리안 혁명을 수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운명은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민중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이 인정 받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투쟁하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 추모식

추모식은 카라카스 군사학교(마운틴 바락)에서 시작되었다. 4F는 2월 4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 차베스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날이다. (출처: granma.cu)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차베스의 묘 외부에서 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리기도 했다. (출처: elpitazo.com)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민중이 만든 군인” 행사에서 전 세계 대표단과 대화하기 위해 모여 있다.

인간성 수호를 위한 지식인과 예술인 네트워크 포럼

마두로 대통령이 인간성 수호를 위한 지식인과 예술인 네트워크 포럼 참가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YouTube)

인간성 수호를 위한 지식인과 예술인 네트워크 포럼 (출처: albaciudad.org)

반제국주의 차베스 포럼

(출처: Twitter @Sencamer_)

(출처: Twitter @Sencamer_)

1회 풀뿌리 운동 단체 및 사회운동 총회의 준비회의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11월에 카라카스에서 개최되는 1회 풀뿌리 운동 단체 및 사회운동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사회 운동의 대표들이 준비회의를 진행했다.
(출처: diario-octubre.com)

세계여성의 날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 노예였던 히폴리타(Hipolita)와 마테아(Matea), 원주민 여성 아파쿠아나(Apacuana)의 유해 상징물이 국가 판테온으로 옮겨졌다. (출처: avn.info.ve)

 

반제국주의의 날

3월 9일 이른 아침에 수 천명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반제국주의의 날을 맞아 행진하고 있다.
(출처: avn.inf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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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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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을 바꾸는 시간
변화에 대담해져라!
2. 같이 한걸음
스페인: 기로에 선 포데모스
3. 변화의 물결
[여성주의 소모임] 뭣이 중헌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미디어
혁명의 수호와 전진을 위한 베네수엘라 인민의 투쟁은 계속된다.
사랑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추모식 사진 스케치
4. 국제뉴스
[프랑스] 이민정책 토론에서 주도권을 쥔 르 펜
[라틴아메리카] 볼리비아, 보편적 시민권 도입을 주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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