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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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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을 바꾸는 시간
국제노동기구(ILO) 세계 임금보고서 2016/17: 직장 내 임금 불평등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2. 같이 한걸음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

3.변화의 물결
사드 배치 반대와 평화 투쟁의 선봉에 선 소성리 주민들

4. 국제뉴스
[프랑스] 왜 권력은 사회당을 약화시키는가?
[라틴아메리카] 레닌 모레노 후보 에콰도르 대통령 당선

게시됨:뉴스레터

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 황정은(사무처장, ISC)
 심태은(The 숲 편집장, ISC)

1부. 임금 관련 주요 동향

맥락

지난 몇 년간 임금 동향 파악과 임금 정체를 방지하는 지속 가능한 임금 정책의 시행, 세계 곳곳의 수백만 빈곤 노동자의 임금 상승, 공정한 분배 보장, 심각한 임금 및 소득 불평등 감소, 지속 가능한 경제의 한 축으로써 소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세계적인 임금 상승률 둔화

2016/17 <세계 임금 보고서> 1부에서는 2008-09년 금융 위기 이후, 2010년에 세계 실질임금 상승률이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2012년부터 상승률이 둔화되었고, 2015년에는 2.5%에서 1.7%로 4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임금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중국을 빼면 실질임금 상승률은 2012년 1.6%에서 2016년 0.9%로 더 떨어진다.

신흥 경제국과 개발도상국의 낮은 임금 상승률

금융 위기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일부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상승을 보인 신흥 경제국과 개발도상국이 세계적으로 임금 상승을 견인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는 이러한 추세가 둔화되거나 역전되었다. 신흥 경제국과 G20개발도상국에서 실질임금 성장률은 2012년 6.6%에서 2015년 2.5%로 떨어졌다. 지역별 임금 성장률을 보면, 2015년 아시아에서 실질임금 성장률은 4%로 비교적 탄탄했지만 중앙 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는 3.4%로 하락했고, 아랍에서는 잠정적으로 추산했을 때 2.1%, 아프리카에서는 2%에 그쳤다. 2015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에서 실질임금 성장률은 1.3%(브라질에서의 임금 하락이 주요 원인), 동유럽에서는 5.2% 하락했다 (러시아연방과 우크라이나에서 임금 하락이 주요 원인).

선진국의 높은 임금 상승률

이와 대조적으로 선진국의 임금 상승률은 증가했다. G20선진국의 실질임금 성장률은 2012년 0.2%에서 2015년 1.7%로 올랐고, 이는 10년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2015년 실질임금 성장률은 미국이 2.2%, 북유럽, 남유럽, 서유럽을 통틀어 1.5%, 유럽연합 국가 1.9%로 올랐다. 미국과 독일에서 실질임금 성장률이 높았는데, 이는 임금 동향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한다. 아직 이러한 임금 상승이 향후 계속될 것인지, 선진국에서 이전과 같은 임금정체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러 국가에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경제적 상황에서, 임금 하락 자체가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으며 디플레이션 임금-물가 악순환 1이 나타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의 임금 성장률 회복세가 신흥 경제국과 개발도상국에서의 하락분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낮아진 임금 성장률 격차는 두 그룹의 국가 간 임금 수렴과정이 둔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노동소득 분배율 2 복합적 추세

실질 임금 동향은 국내총생산(GDP) 성장과 물가상승과 같은 경제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최근 몇 십 년 간 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상승률보다 뒤떨어져 결국 GDP의 노동 분배율이 떨어진 것을 보여주는 보고서가 많이 발간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화, 숙련 노동자 중심의 기술, 노동시장제도 약화, 대기업에서 생산된 잉여를 투자자에게로 옮길 것을 요구하는 금융시장으로부터의 압박 증가와 같은 요인의 결합으로 발생할 수 있다. 본 보고서에 따르면, 2007-10년 사이에 많은 국가의 노동 분배율이 예상대로 경기에 대응하여 상향 움직임을 보였고, 이후 2010-15년에 일부 주요 국가에서 노동 분배율이 다시금 장기적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국, 독일, 미국은 제외되었지만, 이 국가들도 노동 분배율이 최고 수준보다 훨씬 낮았다.

임금 불평등과 최저임금

평균임금으로는 여러 임금노동자 그룹 간에 임금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알 수 없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세계 여러 국가에서 임금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불평등 수준이 노동자 개인과 생산 특성의 차이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 보고서는 심화된 임금 불평등과 가구 소득 불평등, 노동 분배율 감소 간의 상관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많은 국가에서 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하고 임금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을 도입하거나 강화했다.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적절한 수준으로 설정할 시,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저임금 노동자(대다수가 여성)의 소득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설정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즉, 최저임금 설정은 증거를 기반으로 추진 해야 하고, 사회적 동반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며, 필요 시에는 이들이 대등한 지위를 가지고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 본 보고서는 여러 국가에서 중위임금에 비례한 최저임금 수준의 비교 수치를 보여준다.

성별 임금 격차

전반적인 임금 분배에서 다양한 노동자 그룹간의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 이 중 하나가 성별 임금 격차 인데, 남성 평균 임금에 비해 낮은 여성 평균 임금의 차이를 비율로 나타낸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국가 대부분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전반적으로 좁혀지긴 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 본 보고서에서는 여러 국가에서 시간당 성별 임금 격차의 최신 추산치를 볼 수 있다. 이 수치는 국가별로 0에서 45%까지로 다양하다.

2부. 직장 내 불평등

상위에서 심해지는 임금 불평등

한 국가의 임금 불평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다. 본 보고서에서 한 국가 임금 노동자를 임금에 따라 오름차순으로 정리하고 10개의 그룹(10분위수)이나 100개의 그룹(100분위수)로 나누어 살펴본 바, 대부분의 국가에서 임금분포 전반에 걸쳐 임금이 점진적으로 오르고, 상위 10%에서는 급격하게 상승하는데, 특히 상위 1%에서는 가장 급격하게 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럽에서 임금소득 최상위 10%는 각 국 모든 노동자의 총 임금의 평균 25.5%를 받는다. 이는 하위 50% 노동자가 받는 금액(29.1%)과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면 자료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상위 10%가 차지하는 몫은 신흥 경제국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브라질 35%, 인도 42.7%, 남아프리카 49.2%이다. 남아프리카와 인도는 하위 50%가 각각 총 지불 임금의 11.9%, 17.1%를 받는다.  

임금 분포의 실질적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는 노동자 특성

본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의 기술 관련 특성(교육 수준, 나이, 근속 기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인도 임금과 임금 불평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성별, 기업 규모, 계약 형태, 노동 분야가 큰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표본의 기술통계는 대학 학위가 반드시 고액의 보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또한, 고액 연봉 노동자 중에서 부동산과 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고액 보수를 받는 십분위로 올라갈 수록 여성의 비율이 낮아진다는 것을 입증한다. 유럽을 예로 들면, 가장 보수가 낮은 3개의 십분위 그룹에서 여성의 비율은 평균 50-60% 이고, 이 수치는 가장 임금이 높은 상위 10%에서는 35%로 상위 1%에서는 20%로 떨어진다. 신흥 경제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차이는 극심해진다. 본 보고서에서 교육 수준, 나이, 근속 기간과 같은 개인의 기술관련 특성에 기반한 임금을 설명하기 위해 표준 모델을 운영해 보았지만, 유의미한 임금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다. 실제로 개인의 실질 임금과 기술 관련 특성에 따라 예측한 임금 사이에는 큰 차이 (경우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기업 3 간 불평등의 역할

기존의 개인 기술관련 특성이 임금의 차이를 거의 설명하지 못하자, 직장이 임금 불평등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최근 문헌에서 보이는 기업 간 불평등(기업 간 평균 임금의 차이로 측정) 증가는 1981~2013년 사이 미국의 임금 불평등이 심해진 주요 이유이자, 브라질에서 1996~2012년 사이 임금 불평등이 감소한 이유이다. 미국에서 기업 간 불평등이 높아 일부 기업에 몰려있는 고숙련 노동자와 다른 부문에 모여 있는 저숙련 노동자 사이에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는 주변 활동을 하청이나 가맹점으로 아웃소싱하거나 구조조정하는 추세와 일치한다. 브라질에서는 높은 최저임금이 기업 간 불평등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업 간 불평등의 정도

본 보고서에서 개인 간 임금 불평등이 낮으면 기업 간 임금 불평등도 낮으며(스웨덴과 노르웨이) 전자가 높으면 후자도 높은 경우(영국과 루마니아)가 많은 국가에서 보이며 두 가지 불평등이 반비례하는 경우도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업 간 불평등은 선진국에서보다 개발도상국에서 높게 나타난다. 선진국에서 상위 10% 기업의 평균 임금은 하위 10% 기업의 평균 임금보다 약 2-5배 높으며 이 비율은 베트남에서는 8배, 남아프리카에서는 12배로 높아진다. 또한, 낮거나 높은 평균 임금을 지불하는 기업의 비율이 높은 영국에 비해서 노르웨이는 중간 수준의 평균 임금을 지불하는 기업의 비율이 높다. 구조적 차이를 반영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저임금과 중간임금을 지불하는 대다수의 기업과 훨씬 높은 평균 임금을 지불하는 소수의 기업 간의 차이가 큰 경향을 보인다.

기업 내 불평등의 역할

최근 임금 동향에서 기업 간 불평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것이 항상 전체 임금 불평등의 가장 주요한 요인은 아니다. 이전 기록에서는 미국에서 전체 임금 불평등의 주요 요인은 기업 간 불평등보다는 기업 내의 불평등이라고 보았다. 최근 임금 불평등에서 기업 간 불평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했지만 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있는 “대기업” 노동자 사이에서는 기업 내/간 불평등 거의 같은 정도로 모두 상당히 증가했다.

유럽의 임금 불평등 피라미드

2010년 유럽에서는 기업 내 임금 불평등이 전체 임금 불평등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기업의 평균 임금 순위와 각 기업의 최저 및 최고 임금을 살펴본 결과, 유럽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평균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기업에서 기업 내 임금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해당 노동자가 소속된 기업의 평균 임금을 비교했을 때, 대부분(80%)이 기업의 평균 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그래프의 저점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은 소속된 기업의 평균 임금을 훨씬 밑돌았는데, 이는 부당한 저임금 지급으로 인해 해당 기업 내 임금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프의 고점에 있는 0.1%의 개인은 소속 기업의 평균 임금이 시간당 45 유로이지만 시간당 211 유로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보고서에서는 그래픽을 활용하여 일부 기업이 소수에게 지급하는 지나치게 높은 임금이 심각하게 불평등한 임금 재분배의 ‘피라미드’를 형성하는 데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임금 불평등의 정도와 수준이 기업 간 뿐만 아니라 기업 내에서도 나타남을 강조한다. 선진국과 신흥 경제국의 사례를 모두 분석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신흥 경제국의 경우 이 조사 수행을 위한 ‘매칭’ 데이터(노동자와 해당 노동자가 일하는 기업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았다.

기업 내 성별 임금격차

본 보고서는 또한 유럽의 ‘매칭’ 데이터를 활용해 성별 임금격차를 계산했다.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존재하고, 임금 분포의 중하위보다 상위에서 격차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전반적으로 시급에서 나타나는 성별 임금격차는 약 20%였으나, 상위 1%의 소득을 올리는 개인을 살펴보면 그 격차가 45%로 증가한다.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CEO의 경우, 성별 임금격차는 50%를 상회한다. 또한, 높은 수준의 평균 임금을 지급하는 기업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높은 평균 임금을 지급하는 1%의 기업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50%에 육박했다. 그리고 성별 임금격차는 젊은 세대에서부터 나타나지만 노동자가 40세 이상일 경우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3부. 종합 및 결론

국제적 차원의 정책 공조 필요

평균임금 정체와 노동비율의 감소는 사회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성장과 임금인상의 불일치로 인해 노동자와 가족이 경제발전의 온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더욱 좌절하게 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낮은 임금 인상률이 가계 소비를 저해하고, 특히 다수의 경제대국에서 동시에 임금이 정치되었을 때 총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2015년에 나타난 여러 국가에서의 높은 임금 인상률은 국경을 넘어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할 시, 높은 임금 인상률이 지속 또는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국가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높은 임금 인상률로 인해 기업과 일자리가 지속될 수 없는 수준으로 인건비가 오르거나 수출과 투자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별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이전에 발간된 세계 임금 보고서에서는 너무 많은 국가가 동시에 임금 절제정책 4을 추구하거나 수출 증대의 측면에서 경쟁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정책공조를 강조했다. 두 경우 모두 역내 또는 전 세계적인 총 수요의 감소나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의 G20 정상회담 의제에 임금정책이 포함된 것은 고무적이다. 2016년 G20 국가들은 임금과 생산성의 실질적 증대를 위한 거시경제 정책 실행과 지속 가능한 임금 정책 원칙을 수립하여, 최저임금과 단체교섭 등과 같은 강화된 노동시장 제도와 정책을 통해 임금 인상을 지원하여 생산성 증대에서의 개선점을 더욱 잘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별 정책 수단 영역

지속 가능한 임금 성장과 모두가 경제 발전의 과실을 정당하게 분배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모든 차원에서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 대응을 위해서는 또한 장기적인 트렌드와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적절한 정책 대응은 임금 발전과 임금 불평등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구체적인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 정책은 각 국가 경제의 패턴과 동인에 기반해야 하며, 많은 트렌드가 비슷한 개발도상의 국가들에게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 최저임금과 단체교섭 최저임금과 단체교섭은 기업 내 및 기업 간 임금 불평등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단체교섭이 이루어지는 방식의 차이는 각기 다른 효과를 불러온다. 다수의 고용주가 참여하는 상황에서 전 국가적, 산업별, 지사별 차원에서 단체교섭을 진행할 시에 각 차원간의 조율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기업 내 및 기업 간 불평등이 모두 감소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정부가 단체협약 적용 대상을 특정 부문 또는 전국의 노동자에 확대 적용하도록 한다면 앞서 말한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단체교섭 제도가 편협하게 기업차원에서만 적용된다면 기업 내 임금불평등 문제에만 그 효과가 국한될 것이다. ILO는 이미 단체교섭과 최저임금에 대한 국제 표준을 제정했으며 이에 대한 정책 가이드라인을 최근 발표했다. 해당 정책 가이드라인에서는 정책도구로서의 최저임금과 단체교섭의 상보성을 강조했다.
  • 단체교섭을 통한 불평등 감소를 위한 노사 주도의 신규 이니셔티브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프로포절과 이니셔티브가 추진되었다. 목적은 점점 증대되는 기업 간 불평등, 특히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불평등을 공급체인 상의 모든 당사자를 단체교섭 협정에 포함하는 것을 통해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일부 기업이 구매자가 최저가격을 찾는 경쟁적 시장에서 기업 차원의 임금 인상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의류 생산을 주로 하는 국가에서 일부 초국적 기업들이 생산업체와 노동조합과 함께 공동 이니셔티브를 시작하여 업계 차원에서 다수의 고용주가 참여하는 단체교섭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5.
  • 최상위 수준의 임금: 기업의 자체 조절? 아니면 더 많은 규제? 본 보고서에서 나타난 기업 내 임금 불평등의 규모를 감안하면, 기업은 임금 불평등을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절하는 데에 일정 역할을 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다수의 CEO가 효과적으로 자신의 임금을 정하고, 주주들은 사회적 가치나 기업 성과에 맞게 정당한 수준의 임원 보수를 산정하는 데 실패했다. ILO는 “지속 가능한 기업은 단체교섭과 노동자 정보, 협의, 노사관계 참여 등과 같은 사회적 대화와 모범적 산업 관계에 관여한다. 이는 양측이 공유하는 가치와 신뢰 및 협력,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행동을 추구하면서 서로 윈-윈 상황을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본다. (ILO, 2007, P. 5) 과거에는 상위 수준의 임금을 조절하기 위해 보상의 투명성과 주주의 “(임원)보수 관련 발언권”에 초점을 맞춘 조치를 취했다. 이제는 장기적 기업 성과보다 단기 주주가치에 기반한 보상금 패키지 지급을 예방하기 위해서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지속 가능한 기업을 위한 생산성 향상 전체 임금 불평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기업 간 평균 임금 격차임을 감안하면, 지속 가능한 기업들 간에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은 더 높은 임금과 임금 불평등 감소라는 효과를 동시에 불러올 수 있다. 성장과 불평등이 서로 교환 관계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양극화와 아웃소싱 때문에 기업 간 불평등이 커지는 것이라면, 부가가치가 적게 창출되는 부문에서는 생산성 향상의 여지가 적을 것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보면, 2007 ILO 지속 가능 기업 추구 관련 보고서에서는 지속 가능한 기업 개발과 불평등, 차별은 양립할 수 없으며, 창조와 지속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기업의 변화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경제성장의 주요 동인인 이익 추구와 인간의 존엄성, 환경적 지속 가능성, 양질의 일자리를 존중하는 개발에 대한 요구가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노동자 간 임금 불평등 해소 취약하고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포함하고 보호할 때에만 비로소 노동시장 제도와 임금 정책이 진정한 효과를 발휘해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성별 임금격차(여성과 남성 간 평균 임금의 격차)는 여전히 전 세계적인 이슈이다. 본 보고서는 성별 임금격차가 거의 모든 종류의 기업에서 나타나지만, 특히 평균 임금이 높은 기업에서 그 격차가 더욱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기업 차원의 직무평가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법률 제정, 정부에 의한 이 권리의 효과적인 행사, 노동자가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법 접근성 향상 등을 위한 중요한 보완적 요소임을 나타낸다. 또한, CEO 급여를 일정 범위 내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본 보고서에 제시된 것과 같은 남성과 여성 CEO의 큰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 감소 위한 다른 조치

상기 언급된 조치들은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모든 조치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격년을 주기로 발행되는 세계 임금 보고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직전 보고서에서는 임금과 가계 소득이 더 넓은 범위의 불평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했고, 불평등 감소를 위한 다른 정책적 조치를 제안했다.

임금격차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세금과 이전소득 형태의 재정 정책 많은 선진국의 조세제도는 최근 몇 년간 후퇴를 거듭했으며, 이는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심화했다. 법인 및 개인 소득세 회피를 해소하고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세금 감면은 조세제도에서 사라진 진보성을 일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더욱 가파르고 진보적인 조세제도는 임원 보수를 낮추어 CEO가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할 유인 요소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현금으로 직접 제공되거나 공공근로 기회 또는 고용 보장, 식료품 보조 등의 형태로 저소득 가구에 지급되는 이전소득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는 재정정책도 필수적이다. 많은 국가에서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해 왔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이나 노년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인구가 실업, 장애, 산재나 모성보호 등 육아와 가족과 관련한 혜택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ILO, 2014b)

종합적 대응책의 중요한 요소로서 임금과 임금 분포에 간접적을 영향을 미치는 정책 여기에는 양질의 교육에 대한 접근성, 직업 기술 향상을 위해 진행되는 프로그램, 구직자와 일자리 간 더 나은 매칭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또한,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임시직 또는 파견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금 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도 포함된다. 특히, 비정규직 고용 형태는 산업화된 국가에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전에는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동시장이 있던 개발도상국에서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에게 “정규직”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것과 동일한 고용상의 보호를 제공함과 동시에 각기 다른 고용계약 전반에 걸쳐 이러한 보호 조치를 동일하게 제공하도록 하는 목표를 가지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 간 처우의 평등 원칙을 실행하고, 고용상에 따른 차별을 예방하며, 간접적인 성차별을 줄일 뿐 아니라 더 낮은 보수와 열악한 근무조건을 일부 노동자에게만 제공하여 인건비를 절감할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을 타파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Notes:

  1. Wage-price spirals. 물가와 임금이 번갈아 올라가는 현상
  2.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
  3. 본 보고서에서는 “기업(enterprise)”와 ”기관(establishment)”을 구분 없이 사용했다.
  4. wage moderation
  5. ACT 이니셔티브 관련 웹사이트 참조: http://www.ethicaltrade.org/act-initiative-living-w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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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글: 앤드류 돕스
번역 : 홍정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그린 레프트 위클리(Green Left Weekly)의 “The US, not North Korea, is the biggest threat to peace (https://www.greenleft.org.au/content/us-not-north-korea-biggest-threat-peace)”를 번역한 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3개월도 채 안됐지만, 미국이 곧 핵전쟁에 착수하리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핵전쟁이 먼 얘기 같지만, 이를 촉발할 수 있는 불씨는 존재한다. 항공모함이 한반도로 향하고 있으며,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사소한 오판이나 실수가 일촉즉발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데, 실제적 위협에 직면한 북한은 핵무기에 의존해 저항하게 될 것이다.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우리와 이 시나리오 사이에 놓인 중요한 점은 바로 이성을 갖추고 트럼프와 김정은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 발언
이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미국 언론은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것은 모두 북한 측에 있다고 보도한다. 북한에 대한 무단침략 위협을 다룬 기사에서 NBC뉴스는 북한을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이 어떠한 경고도 없이 시리아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한지 일주일도 채 안 돼 호주의 방위산업부장관은 북한을 “세계의 가장 큰 위협”라고 지칭했다. 뉴욕타임스 는 올해 미국이 각종 전투에서 적어도 1,000여명의 민간인을 살상했지만, 그래도 중국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을 “통제”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방 세계는 이 작고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부추기기 위해 인종차별적인 케케묵은 ‘황색공포’를 들춰냈다. 이는 동아시아인의 “기이함”에 대한 오랜 편견과 함께 피해망상을 증폭시켜 북한 주민들의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트럼프 같은 호전적이고 편협한 지도자의 치하에서, 이 치밀하고 초당적인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핵전쟁 위협을 불러일으킨다.

서방 세계의 북한 때리기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북한 사회 전체가 “미쳤고”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비방한다. 두 번째로, 북한은 설득되지도 않고 외교적 합의를 존중하지도 않는다고 비난한다. 마지막으로는 북한이 어느 때고 발끈해서 이유 없이 수백만 명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북한 때리기는 미국과 동맹국의 엄청난 군사적 압박을 요구하고, 안타깝지만 우리 또한 북한을 붕괴시키는데 동참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터무니없이 허황된 것이다. 북한이 미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확실한 예이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를 미치게 만든 후, 그런 반응을 피해자의 비합리성에 대한 증거로 사용하여 학대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주변 상황
북한은 남쪽으로는 남한과 북쪽으로는 중국과 접해있다. 남한에는 미군 28,500명이 주둔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그야말로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집결해 있다. 게다가 북한 동쪽에는 수십 년 동안 한국을 잔인하게 점령했던, 그리고 지금은 수만 명의 미군 병력이 주둔해 있는 일본이 있다.

북한은 자신들을 침략하거나 점령했던 기억이 생생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또한 1950 ~ 1953년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평화협정조차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은 엄밀히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와 전쟁 중이다. 이 군대는 북한을 침략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라면 어떤 나라든지 편집증뿐만 아니라 존재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미군이 “불량국가”로 낙인 찍은 나라들을 침략한 것을 비추어보면, 북한이 방어력을 키우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은 여전히 살아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북한 인구 1/4의 목숨을 앗아갔고,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 평양에서는 어떤 건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이러한 맥락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북한의 군사적 선전을 공격적일 정도로 산란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이 군국주의에 “미쳤다”면, 미국도 완전히 미친 것이다.

미국 사회의 선전논리가 북한의 타당한 우려를 아주 쉽게 묵살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 유니콘을 믿는 이상하고 단순한 사람들이라는 근본적 인종차별적 가정 때문이다. 이 가정은 동양인을 설득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무력으로 다뤄야 하는, 거의 인간 이하의 “다른” 것으로 간주하는 오리엔탈리즘 1 논리에서 기인한다.

북한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실과도 괴리되어 있다. 북한은 유의미한 전력투사능력 2이 없다. 북한의 해군 해상 함정의 작전 범위는 해안에서 약 50 킬로미터 내외이며, 그나마도 미군 때문에 범위가 남한으로 국한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동맹국이며 북한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북한의 무력은 억제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사일과 핵무기는 어떨까? 북한은 4월15일 미사일 시험발사에 실패했지만 미사일을 일본에 발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포격만으로 서울을 초토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이 이에 대응해 미사일을 요격할 텐데 왜 그렇게 하겠는가?

이러한 일방적 공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근거 없는 “미쳤다”는 주장밖에 없다. 물론 그들이 오판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이 특히 위험하다는 주장은 거의 언제나 아무 이유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길길이 날뛰며 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유치하고 비인간적이며 인종차별적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미국을 직접 공격한다는 주장도 얼토당토않다. 북한은 미국의 수천 마일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무기가 없으며, 이를 개발하는데도 수년이 더 걸린다. 설사 목표에 도달한다 하더라도(아주 일정치 않은 미사일 시험발사 역사를 보면 목표 달성이 매우 어렵겠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에 비해 무기가 수천 배 적다.

미국 안보에는 북한 핵 위협보다 케이블 뉴스가 훨씬 더 위험하다.

1) 협상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전적으로 미국의 공격을 막으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북한과 미국 간의 평화협상을 시작하면 되지 않는가? 협상이 타결되면 양 쪽 모두 벼랑 끝 위기에서 벗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가 세계를 향해 문을 개방할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은 그 간의 모든 협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미쳤다”는 주장이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면, 앞서 말한 통념은 투사의 전형적 사례이다.

과거 협정을 배반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여기서 주요사건은 1994년 양국이 서명한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간의 기본합의서(제네바합의)”와 관련이 있다. 제네바합의를 통해 기본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북한이 경제 정상화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핵개발 동결을 약속한 것이었다.

협정 이행을 위한 선의의 표시로 북한은 제한적 무기 사찰 보고서를 제출했고 미국은 한국과의 군사훈련을 취소했다. 또한 북한은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에너지로 사용했기 때문에 미국은 핵 무기화를 할 수 없는 경수로 2기가 건설될 때까지 중유를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거의 즉시 합의를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 협정 서명 2주 후,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고 이 협정이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유화정책”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의회는 중유 제공을 위한 충분한 자금을 제공하지 않았고, 따라서 미국은 제네바 합의문에 명시된 의무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미국은 또한 4년 넘게 경수로 건설에 대한 첫 예비단계 조차 착수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 합의서 상의 일정을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미 의회가 북미 관계 정상화 노력에 제동을 걸었고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도 합의 이행에서 한발 물러섰다.

북한은 최소한 4년 동안은 합의 이행을 위해 협력을 했으며, 실제로 핵 시범 프로그램 시작 전에 핵 개발을 재개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북한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새 협상을 거부하고 나서야 이 시범사업을 본격적인 무기개발로 전환하였다.

북한은 미국이 협력할 때는 협력하고, 약속을 어길 때는 이에 맞섰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이후 2003년에 시작된 북한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간의 6자회담까지 일관되게 이어졌다.. 당시 6자회담으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가 확실시 됐었다.

그러나 미국이 마카오 은행에 있는 북한 자금 2,400만 달러(269억 5,200만원)의 동결조치 해제를 거부하면서 6자회담이 결렬되었고, 6개월 후에 북한이 첫 핵무기를 실험하게 됐다. 하지만 동결된 2,400만 달러만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북한 핵위협은 없었을 것이다.

2) 위선
북한이 억압적인 정권 하에 있는 나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이 핵심은 아니다. 미국이 도덕적 잣대로 적을 규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잔인한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때론 제재하기도 했던 미국의 오랜 역사를 보면, 미국이 지지하거나 반대할 국가를 결정할 때 인권이나 자유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키스탄이 지하드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북한의 15배에 달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개탄을 덜 하지 않는가.

북한과 달리, 파키스탄은 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으며 미국의 군산복합체로부터 무기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주 국가를 표방할 뿐만 아니라 자주 국방을 추구한다. 미국이 협상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핵전쟁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미국 국민)에게 달려있다.

 

[‘디파이언트 3’ 축약판. 앤드류 돕스는 텍사스 주 오스틴에 거주하는 활동가이자 조직가이며 작가이다.]

Notes:

  1. 이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제제기를 통해 제기된 것을 의미한다. 서구적 시각 내지 유럽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갖고 있다고 주장되는 사고 · 인식 · 표현의 일정한 방식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지적한 것이다. (참고: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77XX61300844)
  2. power projection capability 비교적 먼 거리에서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개되는 군사행동인 원거리투사능력
  3. Defiant. ‘반항적인, 도전적인’이라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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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래리 로젠버그(해외통신원, 미국)
번역 : 황정은(사무처장, ISC)

나는 68세고 걱정이 많다. 그리고 현재 어떤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면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내 동년배는 앞으로 20-30년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기 때문에 기후 변화로 예상되는 가장 끔찍한 미래를 직접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아이들과 손자 손녀에게 물려줄 세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기후 변화를 걱정했던 나는 지난 4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민중기후행진에 참가했다. 행진을 둘러싼 기대로 20만명이 집회에 나와 기후변화에 맞서 싸울 것을 약속했다. 정말 잘 된 일이다. 하지만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집회와 지난 1월에 열린 여성행진에 비하면 그 규모가 아주 작다. 참가자 수와는 관계없이, 여론, 언론인, 주 의원, 미 의회, 다른 국가 정부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결연한 노력과 더불어 각 현장에서의 정치적인 조직 사업이 시급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가 가져올 끔찍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는 정말로 두려운 트럼프 시대에 살고 있다. 예상한대로 거의 세계 모두가 증대되는 위기와 여러 전선에서 공격에 마주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기후 변화를 헛소리라고 하는 대통령이 내각 고위직에 기후변화 부인론자를 임명했다 1.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가 직면한 위협을 대처하는데 엇갈리는 기록을 남겼지만 적어도 기후변화를 문제로 인정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은 반이상향적 환상과 같았다. 우리는 거의 매년 기록적인 지구 온도를 목도하고 있다. 인류는 한번도 우리가 현재 오르고 있는 기온만큼 더운 지구를 경험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상상할 수도 없이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여러 결과 중에서 히말라야와 안데스 빙하로부터 나오는 담수에 의존해 사는 수백 명이 미래에 극심한 위기에 직면할 것은 예측할 수 있다. 미국, 중동의 여러 국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빈번하게 가뭄과 홍수가 발생한다. 해수면 상승 때문에 해안 지역은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해수면 상승 속도 예상치는 다양하지만 보스톤, 뉴욕, 마이애미, 과야낄, 런던, 이스탄불, 아비장, 뭄바이, 자카르타, 오사카, 상해와 같은 해안 도시는 매우 파괴적인 홍수 피해를 볼 것이다. 내륙 지역의 피해까지 더하면 수십억명이 삶터를 떠나야 할 것이다.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식량 재배도 어려워질 것이다. 더 많은 가뭄이 일어나고 더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안타깝게도 충분한 먹거리와 마실 것을 위한 투쟁이 이미 극심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동시에 기온이 올라간 지구에서는 말라리아와 뎅기열 같은 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균이 퍼질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질병이 거의 생기지 않았던 지역에서도 발병할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대규모 이주, 그리고 더 많은 전쟁….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화석 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태우고 있으며 매년 이산화탄소 400억톤을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그리하여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했다. 40만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크게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항상 180-300 ppm 사이였다. 1950년대를 시작으로 이 수치가 급증해 현재는 400 ppm 이상이다. 인간 활동이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

원자 과학자 회보의 경고 문구를 보자.

“조만간 대규모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이 안되면 2100년까지 국가들은 지구의 기후를 완전히 바꾸기에 충분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기후변화 결과로 수백만 명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고 인류가 의존하고 있는 핵심적인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가? 초국적 기업과 오랫동안 지속된 경제적, 문화적 관행으로 화석연료 연소에 중독된 세계가 문명을 위협하는 가운데 어떻게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엄청나고 시급한 도전이 우리 앞에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일련의 절망적인 예측에도 완전히 희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빠르게 산성화되는 바다를 생각해보자. 이런 사실을 그냥 무시할 것인가? 아니다. 미해양대기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100년까지 해수면은 거의 150%정도 산성화가 심해질 것이다. 이런 해양 산성도는 2천만년 동안 경험해본 적이 없는 수치이다.”

바다가 산성화되면 해양 생물 대다수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3. 먹이 사슬 맨 밑에 있는 종에 의존하는 전체적인 생태계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또한 해수 온도가 올라간다. 수천 가지 어류가 서식하는 산호초는 약 5억명 먹이사슬의 핵심적인 부분이고 산호는 더워진 해수 (또는 산성화된 해수)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산호뿐만 아니라 여러 해양 생물종은 해수 온도 상승이나 산성화로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산호와 해양 생물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고 말할 것인가? 주요 식량자원이 사라졌을 때,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제 북쪽을, 가장 북쪽으로 가보자. 우리는 북극 영구 동토층이 녹고 함께 얼어 있었던 엄청난 양의 메탄(이산화탄소보다 더 강력한 온실가스)이 방출되는 위험에 처해있다 4. 메탄 방출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더 넓은 영구 동토층이 녹고….

현재를 살고 있는 내 세대는 20년 후 우리 아이들에게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여러 국가에서 석탄 사용을 줄이기 시작했으며 풍력이나 태양열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우리가 계속 적응하려 노력하고 혁신을 이뤄내고 여기저기 필요한 방파제를 세울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들이 기후변화의 악몽과 씨름하지 않아도 될까?

유감이지만 아니다. 우리는 너무 천천히 변화를 만들고 있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대처할 수 없는 대기와 해양 변화와 만연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세계 평균 기온 상승을 이전에 예측했던 2℃ 5가 아닌 1.5℃로 제한해야 한다. 이미 1.1℃가 올랐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파리기후협약에서 약속한 것만큼 빠르게 행동한다 해도 지구의 온도는  2.6℃~3.1℃ 오를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내가 잠을 못 자는 이유는 또 있다. 점차적으로 그린랜드 빙상이 녹고 있고 바다로 흘러 들어올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남극에 대해 미항공우주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남극 대륙 서쪽 아문센 바다의 빙하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 결과 전세계적으로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한다. 더구나 빙하가 녹으면서 남극대륙 서부의 빙상도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해수면은 3~4미터 상승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삶터를 잃게 된다.”

해수면 상승은 어느 정도까지 괜찮은 것일까? 방글라데시만 두고 보다면 2050년까지 대략 1800만명이 강제 이주해야 한다.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미 국립학술원 국가연구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는 매우 위험한 분기점에 있다 6. 기후 변화의 여러 가지 영향을 모두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조금만 더 늦으면 임박한 큰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공포는 수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 정책이 끔찍하지만 다가오는 대재앙의 길로 우리를 내 몬 것은 그가 아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취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석유와 가스 생산을 기록적으로 증가시키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이었을 당시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프래킹을 추진했다. 미국과 다른 대다수 국가는 결과를 생각지도 않고 수십 년 동안 화석 연료를 사용했다. 그 결과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석유 대기업 엑손은 1977년 그들의 행동이 초래할 심각한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막대한 이윤을 위해서 지구를 계속 파괴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손녀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래서 다시 묻고자 한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가?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진실이 있다. 우리는 이 재앙이 더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너무 늦기 전에, 그리고 우리 자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지체할 여유가 없다. 우리 지역 공동체와 국가에서 한마음으로 정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개인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절망적이라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의도가 분명하게 설명되었기를 바라지만, 상황은 절망적이고 문제는 심각하다. 앞에서 설명한 격변하는 결과를 막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방안이 있고 그 방안들을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희망의 단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행동해야만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은 그들의 정부가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하는 효과적인 단계를 밟아 갈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전력 생산을 풍력과 태양열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원이 주요 전력원으로 이 되도록 빠르고 대규모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산업과 시설을 대상으로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필요한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기술적, 경제적으로 가능한 일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매우 중요하지만 자주 논의되지 않는 것이 한가지 있다. 교통, 난방, 산업 부문에서도 화석 연료 사용을 급격하게 줄이고 이미 대기 중에 있는 과도한 이산화탄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예를 들어 향상된 토지 관리 기법)을 모색해야 한다.

의견 개진과 선동은 우리의 수단이다. 의견 개진에는 공공 교육, 기후변화 부인론 반박, 국가 통치기구와 지역 의원을 향한 로비, 기후변화에 맞선 행동을 할 정부 선출 등의 방법이 있다. 선동에는 직접적으로 화석연료 기업, 기관, 지지자들을 대응하는 것이 포함된다.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하려는 사람들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단계를 밟아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기후변화 활동가로서 평등, 정의,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다른 운동진영과 연대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다양한 그룹으로부터 에너지와 열정을 모아 진정한 대중운동을 만들어낸다면 기후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동기를 부여하고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원자과학자 회보를 다시 보자.

“기후 변화라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긍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노력은 재앙 수준으로 더워지는 지구를 막기에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추세를 되돌리지 못한다면 기후변화 피해는 인류를 괴롭힌 다른 문제들이 별 것 아니게 보이도록 만들 것이다. 이 세계를 고치기 위해 열망과 수단이 있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기후변화보다 더 긴급한 사안이 또 있는가?

Notes:

  1.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청정전력계획을 대부분 무효화했다. 미 환경보호국 국장이 수년간 공개적으로 청정전력계획에 맞서 싸웠다. 미 에너지부 장관에는 수년 전 에너지부 해체를 제안한 기후변화 부인론자가 임명 되었다. 또한 국무장관은 엑손 모빌 전 CEO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변화 부인론을 제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2. 이산화탄소 농도의 갑작스런 급증은 인간이 유발한 것이 아니란 증거는 찾기 힘들다. 또한 이산화탄소가 대기를 온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한 세기 넘게 인정받아왔다. 기후변화에 인간활동이 기여한 부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 인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와 “지구를 둘러싼 담요”,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Kerry Emanuel, MIT Press, 2012)”에서 볼 수 있다.
  3. 엘리자베스 콜버트 “여섯번째 대멸종: 아주 불편한 역사” 헨리 홀트 & 컴퍼니, 2014
  4. 20년 동안 메탄은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상승시키는 온도보다 80배 더 많은 기온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5. 최근까지 많은 과학자는 2℃ 온도 상승은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서 전세계적으로 2℃ 상승은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여주었다.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파리기후협약에서 “ 1.5℃도로 상승폭을 한하기 위해 지구 평균온도의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폭을 2℃보다 ‘훨씬 작게’ 제한한다”고 언급했다.
  6. 미 국립학술원 국가연구위원회, “기후변화의 갑작스런 영향: 기습을 점치다”, National Academies Press, 2015. “지구 기후의 역사 연구는 기후 체계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초래하는 ‘분기점’ – 넘었을 경우 빠르고 주요한 변화가 생기는 기준점-의 불가피성을 보여준다. 나무의 나이테, 바다 침전물, 얼음 핵과 같은 자료로 볼 수 있는 지구 기후의 역사는 몇 십 년에서 몇 년에 걸쳐 빠르게 생긴 큰 변화들이 중간 중간 있다. 이 보고서에서 설명했듯이 자연에는 여러 가지 잠재적인 분기점이 있고 인간이 자연 체계에 초래한 변화들은 더 많다. 현재 탄소 방출 속도는 빨라지는 속도로 기후 체계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분기점을 넘을 가능성을 높인다.”(강조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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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글: 송대한(The 숲 영문본 편집국장, ISC)
번역: 지민경, 예선희(번역팀, ISC)

마을로 통하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소성리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나뭇잎과 덤불, 나무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냄에도 불과하고,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고요해 보였다.

한 할머니는 이곳의 깨끗한 물과 공기, 집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자랑하시며, “여기는 아픈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마을의 위치 덕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셨다. “인민군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했고, 이 마을에 북한 병원을 세워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이곳으로 후송했다. 군인들은 마을의 할머니를 보며 고향이 생각난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소성리를 통하는 외길을 따라 몇 킬로미터 더 내려가다 보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배치된 곳이 나온다. 사드는 명목상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 같으나, 배치 지역과 성능을 잘 살펴보면 사드의 진정한 기능이 중국발 미사일을 높은 고도에서 탐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1. 사드로 인해 소성리는 아시아 내 전쟁과 평화의 경계에 서게 되었다. 마을 주민과 성주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들은 사드 부품과 운용인력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로를 봉쇄하고 있다. 필자와 동행인은 사드에 대항하는 마을 주민들의 평화투쟁에 대해 알기 위해 소성리를 방문했다.

사람들이 도로 봉쇄를 하고 있는 곳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의미의 싱크홀이 그려져 있다.

사드 배치 반대와 도로 봉쇄의 중심에는 마을 주민들이 있다. 가장 젊은 분이 60세이며, 대부분이 80,90세 어르신이다. 음군선 부녀회장님은 “솔직히 우리는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평화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현재와 같은 남북 긴장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남한은 사드를 배치한다. 우리는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한다. 마을의 모든 어르신들은 한국전쟁을 겪었기에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핵무기가 있으니, 혹시라도 한 개만 떨어져도 온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 그렇게는 하지 말자. 대화로 풀자”고 덧붙이셨다. 사드 반대운동 관계자들은 이 투쟁이 전자기 방사선 2의 해로움에 대항하는 님비현상 3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한반도, 역내, 세계 평화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했는지 설명했다. 사드가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것은 전쟁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역내 각 국가가 다른 국가의 미사일과 미사일 방어 체계를 능가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군비 경쟁을 늘리게 될 뿐이라는 설명도 같이 들었다.

연세가 84세, 85세인 두 어르신은 “1950년 한국전쟁이 나던 해에 18살, 19살이었는데, 그 때 소성리로 시집을 왔다. 그 해에 전쟁이 발발해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다”고 회상하셨다.

우리들은 사드배치 반대를 위한 312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성주 인근으로 이동했다. 촛불집회는 겨울의 차디찬 눈과 여름의 폭우를 견디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겨울에는 직접 만든 난로로 추위를 나고, 여름의 폭우에는 비옷을 입고 견뎠다”고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 김충환 위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촛불집회는 이 도시에서 사드가 완전히 철거된 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의지를 다졌다. “평화와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를 원한다면, 사드를 막아야만 한다. 우리의 의식이 이 정도로 높아졌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저항하는 이유”라고 김 위원장님은 덧붙였다. 사드 사안의 중요성은 소성리, 성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로 느껴지고 있다.

“나무를 때는 난로를 만들어서 사람들 사이 사이에 놓고 불을 피워 겨울을 났다”고 김 위원장임이 말씀하셨다.

밤 9시쯤 촛불집회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소성리로 돌아갔다. 도로를 봉쇄한 곳 옆에서는 오징어와 고구마를 난로에서 굽고 있었고,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날 밤, 한 가족이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나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타를 치고, 딸은 플룻을 불고, 아들은 난로의 불을 맡고 있다. 사실 이 가족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학창시절 때 예술 운동가로 학생운동을 한 경험이 있다. 부산에서 진행되던 촛불시위에 꾸준히 참여하다가, 이번 주말에는 캠핑을 가는 대신 텐트를 이곳에 깔기로 한 것이다. 필자의 동행인이 기타를 들고 연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연주가 이 투쟁 공동체로의 길을 열어주었고, 필자는 그 길을 따라 들어갔다.

“이 기타 연주해도 될까요?”                                            음악회의 주인공 가족

함께 한국의 민중가요를 부르고 나서, 그녀는 사회운동에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렛잇비,” “이매진”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몇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일어나야 했지만, 사람들이 ”한 곡 더”를 외치는 통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30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음악, 후라이드 치킨 그리고 막걸리로 다져진 유대감이 아침까지 이어졌다. 필자의 어색함이 가시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가갈 수 있었다.

필자가 가톨릭 미사에서 노래를 부른 정진석씨에게 칭찬의 한 마디를 건네자, “나는 공공장소에서 한 번도 노래나 기타를 연주해 본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는 대구에서 왔고, 4월 26일 투쟁 이후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그 날 4, 800명의 경찰이 도로 점거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어르신들을 짓밟고 사드의 주요 부품을 기습적으로 들여왔다. 4월 26일 이후, 그는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여기서 지키고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김채영씨는 지난 3월에 롯데가 골프장을 사드 배치지로 넘기는 문서에 사인을 했다는 발표가 나자 이 곳으로 와 투쟁하기 시작했다. 6년 전, 미 해군 기지 설립을 반대하는 강정마을의 투쟁을 보고,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평화 운동에 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나타난 새로운 정치적 지형에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전 정부의 사드 배치 시행 과정을 조사하고, 적절한 법적 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사드가 한국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사이에서 여론은 50 대 50으로 갈렸다. 김씨는 이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사드의 근본적 한계와 진정한 목적이 드러나면 여론은 사드배치 반대로 돌아설 것이고, 사드를 완전히 막을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어떤 분이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면서, 점심은 매운 콩국수가 될 거라고 했다. 필자는 이영우씨 옆에 앉았다. 그는 포항의 기술고등학교의 교사이고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했다. 그는 전날 밤 현란한 손가락 기술을 뽐내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보통은 드럼을 친다”고 말했지만, 그가 학생들을 위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역시 4월 26일 이후부터 계속해서 이곳을 찾고 있다. 그는 숙취가 있다며, 국물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숙취에는 콩나물국이 최고” (왼) “오늘 점심은 비빔국수입니다. 여러분들을 여기 계속 붙잡아두려고 이제부터 일주일 치 식단을 얘기해 주려고요.”(오)

필자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역주민들, 그들의 이야기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듣고 또 나누었다. 떠나는 날,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신 분과 얘기를 나눴다. 그의 부인은 일행이 지낼 숙소를 알아봐주고, 음식 등을 챙겨주셨다. 그녀는 매일 같이 운전을 하고 여기에 온다고 한다. “막히지 않으면 30분 정도 걸리고, 막히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매번 온다고 한다. 가끔 아이들도 데리고 오기도한다고. 결혼 기념일에는 일을 쉬고, 두 분이 망설임 없이 서성리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평화의 최전선을 더욱 강화시킬 많은 사람들의 결의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의미한 방문이었다.

Notes:

  1. 사드는 높은 고도에 있는 미사일 탐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성주에 배치해서는 남한 인구의 절반 가량이 거주하는 서울을 목표로 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탐지할 수 없다.
  2. 미 육군의 AN/TPY-2(사드 레이더) 사용자 매뉴얼에 따르면, 사드의 전자기 방사선은 심각한 화상과 내장기관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레이더 전방 100미터 이내의 출입을 금지해야 하며, 전방 3,600미터 이내의 지역에는 허가 받은 사람 외에는 출입을 금해야 한다.
  3. NIMBY (Not in my backyard). 유해하거나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시설을 인근 지역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
  4. 탄핵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자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게시됨:뉴스레터

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정성미(국제팀, ISC)

* 본 기사는 Le Monde의 “Pourquoi le pouvoir a toujours miné le Parti socialiste
(http://lemde.fr/2qzlLJj)”를 번역한 글입니다.

급진적인 사회변화라는 이념을 내세워 승리했음에도, 일단 권력을 쥐게 되면 사회당은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 이것이 사회당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역사학자 마르크 라자르는 주장한다.

패배한 정당이냐, 집권 여당이냐? 사회당은 두 선택지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갈등 때문에 파괴될 수도 있다. 시앙스포의 역사학·정치사회학 교수이자 역사 연구소 소장이면서, 로마에 있는 뤼스 1의 행정학회 회장이기도 한 마르크 라자르는 2013년 렌 대학 출판사에서 발행한 『통합 사회당, 역사와 후손2의 공동 저자이다. 그는 사회당이 집권하여 권력을 행사하면서 마주했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최근 마뉘엘 발스 3가 선언했듯, 사회당은 사망선고를 받았는가?
나는 좀 더 신중하게 보고 싶다. 사회당이 겪고 있는 위기는 심각하지만 사회당은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위기를 겪었다. 5공화국 4 시기에 사회당이 권력을 쥐게 될 때마다 수반된 갈등은 사회당이 선거에서 실패하게 만들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5의 첫 번째 임기 때(1986년에서 총선에서의 패배), 두 번째 임기 때(1993년 총선에서의 완패),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리오넬 조스팽 6이 결선투표에도 오르지 못했을 때가 그랬다. 집권하여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사회당은 커다란 어려움과 내부의 고통스러운 논쟁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사회당이 지닌 문제들이 프랑수아 올랑드의 임기동안 더 악화되었는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문제를 크게 키웠다.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과 관련한 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이 특히 그렇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부르제 7에서 한 연설에 나온 유명한 문장, “여러분, 문제는 재정입니다.”는 친기업적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크게 충돌한다.

EU와 관련한 문제도 사회당을 수 십 년간 분열시켰다. 프랑수아 올랑드는 긴축정책으로 돌아서기 위해 예산의 안정성을 위한 조약을 다시 협상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고, 이러한 실패는 사회당 내부에서 이 주제에 관한 분열을 일으켰다. 사회당은 이미 2005년 유럽헌법조약에 관한 국민투표 문제로 이미 심각한 분열을 겪은 바 있다.

5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역할과 관련한 문제도 쉽지 않다. 의회 민주주의의 전통을 지닌 정당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마뉘엘 발스가 주장한 것처럼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수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아니면 브누아 아몽이 제안했고 4공화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좀 더 수평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정상적’ 대통령으로 있었던 올랑드는 사회당 내부에서의 논쟁만 격화시켰다.

끝으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국가의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분열을 조장했다. 이 문제에는 두 개의 상반된 감수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테러리스트의 도전에 준엄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가 이러한 테러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는지 이성적으로 성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 프랑스 사회당은 대체적으로 집권하면 고통스러운 결과를 거두는가?
우선 밝혀둘 것은 1905년 국제노동자동맹 프랑스 지부(SFIO) 8의 창설 이래 프랑스 사회당이 겪은 모든 위기들이 집권으로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치의 대립 때문에 생긴 1920년의 공산당 분열, 1934년의 비시 프랑스에 기울었던 신사회주의자들로 인한 위기, 1930년대 말의 파시즘으로 인한 문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알제리 전쟁은 집권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사회당이 집권했을 때 문제도 함께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창당된 이래로, 사회당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목적, 즉 자본주의와 관계를 끊는 것과 집권하여 정책을 행사하는, 다른 말로 시장경제로 편입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분열했다.

두 연구자 알랭 베르구니우 9와 제라르 그랭베르 10는 이러한 갈등인, ‘권력이 지닌 오래된 고민’을 세밀하게 이론화하였다. 사회당은 프랑스의 다른 어떤 정당보다도 더 자주, 급진적인 사회변화라는 이념과 권력의 현실성 사이의 모순에 직면해왔다. 사회주의자들은 더 이상 혁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와의 단절이라는 이념은 그들 마음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이상은 강력하면서도 급진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1981년의 프랑수아 미테랑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사회주의자들에게 권력의 문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쾌락과 현실의 갈등이라 부른, 매우 고통스럽고 가차 없는 문제와의 대면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갈등을 사회당의 오랜 역사 전체에서 발견한다. 1924년 좌파연합 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은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당시의 정부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920년대 말에 레옹 블룸 11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과 ‘행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합정부가 권력을 체계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앞으로 SFIO가 집권에 성공했을 때, 즉 선거에서 승리하여 압도적인 다수파가 되었을 때는 혁명적인 입장은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갈등은 1936년 인민전선 12이 승리했을 때 다시 나타났다. 사회당 내 우파는 너무 멀리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좌파는 이 승리를 진보적인 사회정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1947년에서 1951년까지의 냉전기간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SFIO는 극단주의자라고 여겨지는 두 세력, 드골파와 공산주의자에 대항하여 MRP 13의 기독교 민주당과 연합하였다. 연합으로 만들어진 중도적인 조직을 운영한 경험은 사회주의자들이 지속적인 불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보기에 중도적인 조직은 사회당이 집권하는데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근원적 갈등이 크게 문제가 된 마지막 시기는 5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사회당이 집권하게 된 1981년이다. 이 때 사회당은 국유화와 사회개혁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2년 후 ‘긴축정책으로의 전환’으로 멈추게 된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혁명이 아닌 사회개량주의를 분명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사회개량주의 14를 처음에는 ‘부끄러운’ 것으로 보았지만, 나중에는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강한 개혁을 지지하는 당원들과 점진적 개혁을 지지하는 당원들 사이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사회당의 좌파는 브누아 아몽의 정책이 정부 정책이 되기를 바랐는데, 급진적인 제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프랑스 사회당, 더 나아가 유럽의 사회주의적 정당들 안에 아직 남아있는가?
반대세력이 되거나 집권세력이 되거나, 패배 정당이 되거나 집권 여당이 되어도 지속된 이 갈등은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이 갈등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위기, 노동계급의 우월한 역할, 혁명적 변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세기 후반, 초기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 이론을 내세웠다. 모범적인 정당은 독일의 사회민주당(SPD) 15이었고, 전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된 힘 있는 이 정당은 비록 권위주의적이고 비스마르크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독일에서는 집권하지 못했으나, 사회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90년대에 SPD 내에서 ‘수정주의 논쟁’이라 불리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16과 칼 카우츠키 17가 맞선 정치적, 이론적 논쟁이었다.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관한 마르크스의 몇몇 예언들이 맞지 않는다며, 혁명이라는 이상을 버리고 좀 더 사회개량주의적인 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대항하여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적 교리와 혁명을 옹호했다. 이 논쟁은 공식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시기 이후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사회개량주의로 기울기 시작했다.

1917년, 마르크스주의와 유럽 사회민주주의 사이에 커다란 단절이 나타났다.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레닌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자를 자처하며, 사회민주당은 원칙을 버렸기 때문에 타락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대결은 좌파를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로 양분함으로써 20세기 좌파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20년, 프랑스에서는 SFIO는 당원 다수가 국제 공산당에 다시 가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레옹 블룸은 ‘누군가는 오래된 집을 지켜야 한다.’고 투르의 사회당 회의에서 말했다. 그러나 블룸 자신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해인 1946년까지는 마르크스주의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다. 그는 인간적 사회주의를 지지하였다. SPD는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크 18의 회의에서 혁명이라는 교리와의 명확한 거리를 천명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상징적으로 단절하였다.

이러한 전환점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을 잡았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와 상관없이 좌파의 마음속에 의미심장한 것으로 남아있다.

프랑스에서는 1946년부터 1969년까지 SFIO의 사무총장이었던 기 몰레 19가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웠고, 미테랑 자신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마르크스주의로 기울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위기와 같은 교리가 점진적으로 폐지되었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오랫동안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적 현실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1990년대부터 시작된 ‘제3의 길’이라는 또 하나의 논쟁을 겪으면서 끝나게 된다.

‘제3의 길’이란 무엇인가?
사회학자이면서 철학자인 영국 출신의 앤서니 기든스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가 잡힌 ‘제3의 길’은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조화를 이룬 정치적·경제적 철학을 수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제3의 길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에 의해, 유럽에서는 1997년에서 2007년까지 영국의 수상이었던 토니 블레어에 의해 적용되었다. 그리고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연방공화국의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 사상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는 변화하였고, 세계화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만들지만 커다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화해해야 하며, 이제는 사회계층이 아닌 개인들이 중요하다.

1990년대에 토니 블레어는 교육과 직업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장 취약한 사회계층을 지원하며 개인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취약 계층에는 서민계층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 중산계층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하나의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아마도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논쟁보다 더 영향이 클 것이다.

또한 이 변화는 정치 판도에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의 대립 때문에 흐려졌다. 중도 좌파는 낙관주의를 품게 되었다. 국가의 역할은 작아졌다. 사회권과 함께 개인의 의무와 책임도 중요해졌다. 이러한 결과들은 모든 사회주의 정당들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흔들어 놓았다. 그들 중 다수는 그들이 제3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에피네 당 20이라는 눈에 띄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왜 프랑스 사회당은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가?
왜냐하면 이러한 제3의 길이 자유주의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고, ‘사회자유주의’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프랑스 좌파 안에 침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집권했을 때,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역시 사회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전처럼 사회개량주의를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역사적인 것이다. 1990년대 말에 제3의 길과 관련한 논쟁으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격분했을 때, 1997년에서 2002년까지 권력을 잡았던 조스팽 정부 21는 프랑스 공산당과 녹색당 등 다수의 좌파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전술적으로 제3의 길로 나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는데, 프랑스 좌파들은 제3의 길이 경제적 자유주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당이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문화적인 자유주의를 받아들일 만큼 진보적이었다면, 경제적 자유주의도 편안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군주정치에서 물려받은 국가가 주도하는 문화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지닌 프랑스에서 사회당은 그러지 못했다.

끝으로, 제3의 길은 좌파와 우파의 분열로부터 벗어남을 가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프랑스의 정치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1789년의 입헌의회에서 여러 정당들이 자리 잡은 위치로 좌파와 우파가 정해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가 이 분열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는 최고의 구분인데, 사고방식, 문화, 정치적 행동방식을 구조화한 역사학자 르네 레몽은 이것을 수마 디비지오(명확한 구분) 22라고 불렀다.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은 5공화국 기간 동안 1차 투표와 결선 투표를 통해 과반을 얻게 하는 투표방식을 지닌 선거법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경제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좌파와 우파 사이의 대립은 점점 어려운 것이 되고 있지만, 선거 때가 되면 이 구분은 다시 명확해진다. 지난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 구분을 어지럽히기는 했지만.

제3의 길을 받아들인 국가가 그 결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사회자유주의의 모든 지지자들이 그 결과를 알고 있다. 제3의 길은 기적의 해결책이 아니다. 확실히 제3의 길은 그것을 받아들인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업률을 낮추었다. 그러나 2008년의 재정 위기 이래로 강화되어온 불평등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제3의 길에 해당하는 정책들이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더 이상은 그 정책들을 시행하는 정당들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예로 이탈리아에서 마테오 렌치 23의 민주주의 운동 24은 다른 정파 25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세계화는 우리를 역사적인 격변기에 몰아넣었고, 유럽의 좌파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다. 이 문제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당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 크기 때문에, 지적인 작업과 이론적 작업이 부실할 때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당은 아마도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미래는?
사회당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이 새로운 사회당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 1971년의 에피네 회의 26 이후, 사회당이 지니게 된 강력한 힘은 하나의 정책에 관한 당내의 다양한 의견들을 통합해왔다.

그러나 그 힘은 이제 사라졌다. 프랑수아 올랑드의 임기 동안 마뉘엘 발스가 말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좌파들이 사회당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오늘날의 프랑스 좌파는 두 개의 극을 지닌 자기장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극은 멜랑숑이고, 다른 극은 마크롱이다. 반대되는 두 힘 사이에서 분열한 사회당은 그 중앙이 약화되고 있으며, 중앙에서 당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당이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인가? 사회당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면 당의 하부조직, 정체성, 전략 등 모든 것을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회당은 19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집권했을 때의 권력 행사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올랑드의 5년 임기가 지나간 지금,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자기반성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자기반성을 거쳐 그들 중 일부가 ‘오래된 집을 지키게’ 될 것이다.

** 꺄뜨린 뱅상(Catherine Vincent)이 마르크 라자르(Marc Lazar)를 인터뷰하고 쓴 2017년 5월 19일자 르몽드 기사. 지난 대선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은 1차 투표에서 지지율 5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결선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였다. 이 인터뷰 기사는 이러한 사회당 몰락의 원인을 다루고 있다.

Notes:

  1.  Libre université internationale des études sociales, 줄여서 뤼스(Luiss)라고 한다.
  2. Le Parti socialiste unifié. Histoire et postérité
  3. Manuel Valls. 올랑드 정부의 총리를 역임하였다. 지난 대선에서 사회당 경선에 출마했으나, 브누아 아몽에게 패배하여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4. 프랑스는 1958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의 권한이 크게 강화된 5공화국이다.
  5. François Mitterrand. 프랑수아 미테랑은 사회당 출신 최초로 대통령직에 올라 1981년부터 1995년까지 14년 동안 집권했다. 이는 2000년 국민투표로 대통령 임기가 5년으로 바뀌기 전까지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가 7년이었고,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테랑이 시라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6. Lionel Jospin. 리오넬 조스팽은 사회당 소속으로 1995년 대선에 나갔으나 시라크에게 패배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시라크와 르펜에 밀려 1차 투표에서 떨어졌다.
  7. Bourget. 파리 교외 북동쪽에 있는 꼬뮌
  8. Section française de l’internationale ouvrière. 줄여서 SFIO라고 한다. 프랑스 사회당의 옛 명칭이다. 1969년에 사회당으로 명칭을 바꿨다.
  9. Alain Bergounioux.
  10. Gérard Grunberg.
  11. Léon Blum. 레옹 블룸은 프랑스 사회당 소속의 정치가로 1919년 하원에 진출하여 사회당을 재건하고, 인민전선을 이끌어 1936년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총리가 되었다.
  12. Front populaire. 1930년대 중후반 파시즘이나 극우세력에 맞서 좌파 조직들이 연합하여 만든 것이다.
  13. Mouvement républicain populaire. 대중 공화주의자 운동. 프랑스의 과거 정당 중 하나.
  14. réformisme. 혁명주의를 배격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점차적으로 사회 개량을 추구해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15.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줄여서 SPD라고 한다.
  16. Eduard Bernstein. 마르크스 교리에 비판을 가한 최초의 사회주의자.
  17. Karl Kautsky.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
  18. Bad Godesberg.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트스팔렌 주에 있는 본의 남부 행정구
  19. Guy Mollet. 프랑스의 총리를 지낸 사회주의 정치가.
  20. parti d’Epinay. 프랑스 사회당을 뜻한다.
  21. 당시 대통령은 시라크였지만 1997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여 조스팽이 총리가 되었다. 조스팽은 취임 이후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고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폈다.
  22. summa divisio. 라틴어 표현이다. 영어로는 The principal division.
  23. Matteo Renzi. 2014년 이탈리아 총리가 되었으나, 2016년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에서 추진한 개헌안이 부결되자 총리직에서 사임하였다.
  24. mouvement démocrate
  25. Mouvement 5 Etoiles.
  26. congrès d’Epinay. 1971년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Epinay-sur-Seine에서 열린 사회당 회의. 미테랑을 제1서기로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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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 배경진(국제팀, ISC)

* 본 기사는 4월 4일자 텔레수르(teleSUR)의 “It’s Official: Lenin Moreno Elected President of Ecuador (http://bit.ly/2ny0wFT)”를 번역한 글입니다.

야당 기에르모 라쏘 1 후보는 여전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 에콰도르 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투표 결과 저명한 장애인 운동 활동가이자 라파엘 꼬레아 2 정권의 전 부통령이었던 국가연합당 3의 레닌 모레노 4 후보가 당선됐음을 발표했다.

개표율이 99.65%에 이르자 국가선거위원회(CNE)는 모레노 후보의 당선 판세는 뒤집을 수 없고, 이 결과가 에콰도르 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모레노 후보와 호르헤 글라스 5 부통령 후보는 48.84%(4,827,753표)의 득표율을 기록한 우파 기회창조당 6의 은행가 출신 길예르모 라쏘 후보와 안드레스 빠에즈 부통령 7 후보를 51.16%(5,057,149표)의 득표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국가선거위원회에서 공식발표가 있은 후 모레노 당선자는 키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들, 특히 청년들에게 좋은 예가 되기 위해 정치를 품격 있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모레노 당선자는 공식 결과에서 라쏘 후보보다 2퍼센트 앞서는 것으로 발표되자 일요일 밤에 승리 선언을 했다.

국가선거위원회에서 투명하고 성공적인 투표과정이었고, 모두 결과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듯이 라쏘 후보와 빠에즈 부통령 후보는 재검표를 요구했다.

모레노 당선자는 라파엘 꼬레아 전임 대통령 하에 도입된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확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UN 장애 및 접근성 특사로 일하기 전,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부통령으로 재임했다.

1998년에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모레노 후보는 장애인을 위한 활동과 공교육 지지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역시 꼬레아 정부에서 일했던 호르헤 글라스 후보는 이제 부통령에 취임할 것이다. 새로운 행정부는 5월 24일에 공식 출범한다.

라파엘 꼬레아 대통령이 10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고, 시민혁명 하에서 수많은 사회적 성과가 창출된 상황에서, 모레노 당선자의 승리는 에콰도르뿐 아니라 더 넓게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 우파 정권으로 회귀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과 달리, 에콰도르는 지난 20년간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휩쓸었던 핑크타이드의 일부로 존속할 것이다.

기야우메 롱 8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은 선거 결과에 대해 “이것은 더 평등한 에콰도르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계획에 대한 긍정적 지지다. 우리는 지난 십 년 간 사회 진보에 큰 진전을 이루어냈다. 이제 앞으로 4년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잦은 교체와 더불어 몇 십 년 간의 사회경제적 불안정 이후, 꼬레아 대통령 하의 국가연합당은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세입을 세 배로 증가시키고, 보편적 의료보험 교육제도를 확대했다.

일요일에 치러진 선거는 모레노 당선자가 지난 2월 19일 1차 투표에서 0.7%도 안 되는 차이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치러진 2차 투표였다.

일요일의 2차 투표에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 수는 에콰도르 내 1,250만 명, 국외 약 40만명이었다. 재외국민 투표소는 마이애미, 뉴욕, 런던 그리고 마드리드에 설치되었다.

모레노 당선자는 수 백 명의 지지자들을 동반하고 키토 북부에서 투표했다. 라쏘 후보는 가족들과 함께 그의 고향 과야킬 9의 항구도시에서 투표했다. 꼬레아 대통령도 다른 장관들과 함께 수도에서 투표했다.

꼬레아 대통령은 투표를 하면서 “지난 몇 년간 극우세력의 반동으로 인해 지금이 이 지역(라틴아메리카)을 위한 결정적인 순간이다. 에콰도르의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른 오후부터 모여있던 모레노 후보의 지지자들은 키토 중북부에 위치한 국가연합당 중앙당사 외부에서 모레노 후보의 당선을 축하했다.

남미국가연합(UNASUR) 선거사절단과 함께 호세 무히카(페페) 10 우르과이 전 대통령을 포함한 국제 참관인이 선거를 감독했다. 무히카 우르과이 전 대통령은 선거가 투명했다고 확인했다.

국가선거위원회와 국제 감독관들이 선거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2월에 있던 1차 투표와 비슷한 양상으로, 야당에서는 부정투표에 대한 루머를 소셜미디어에서 확산시키고 있다.

Notes:

  1. Guillermo Lasso
  2. Rafael Correa
  3. Alianza Pais party
  4. Lenin Moreno
  5. Jorge Glass
  6. CREO-SUMA alliance
  7. Andres Paez
  8. Guillaume Long
  9. Guayaquil
  10. Jose “Pepe” Muj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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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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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숲 4월호 목차 

1. 세상을 바꾸는 시간

  • 풀뿌리 민중의 힘으로 인수한 제1호 제과점

2. 같이 한걸음

  • 남미와 카리브 지역에서 일어나는 여성주의 운동
  • 트럼프 시대, 흑인이 애국자가 된다는 것은?
  •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헝가리 정부

3.변화의 물결

  • 결코 잊혀지지 않는 날이 있다.

4. 국제뉴스

  • [프랑스] 마크롱과 르펜, 두 후보의 거의 상반되는 정책
  • [라틴아메리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혁명 주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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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번역: 이주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cultura Nuestra의 “http://laculturanuestra.com/tomada-primera-panaderia-por-el-poder-popular-en-caracas/”를 번역한 글입니다.

지역 공동체에 대한 방해 행위와 절도, 고양이 털이 묻은 사탕, 녹슨 주전자에 고인 물로 만든 커피, 방치된 음식 위를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착취당한 노동자,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 등. 이 모든 일이 카라카스 도심의 바랄트 가 1에 위치한 민간 제과점인 맨션 2에서 일어났다. 지역 주민들은 상품에 적정 가격을 매기도록 요구했으나, 오히려 원래 빵의 양이었던 180g보다 더 적은 140g의 빵을 받았다.

일명 ‘마른 사람 3으로 알려진 레니스 꼬로모또 무리요 4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 제과점에서 5년간 커피와 조제식품을 만들었다. 대중을 향한 메시지를 통해 그녀는 “차베스 정부 때 있었던 노동자에게 주 2일의 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노동법은 제과점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일해야만 했고, 휴가는 주당 1일뿐이었다. 나는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그 나머지 날조차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하고 주당 220,000 볼리바를 받았다. 오전 7시까지 출근해서 12시까지 일하고, 아이를 보기 위해 잠깐 나갔다가, 오후 4시까지 돌아와 8시 반까지 일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즉, 지난 5년간 노동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일 9시간 이상을 일해야만 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정부로부터 밀가루를 지급받아 90%를 빵 생산에, 나머지 10%를 사탕류 생산에 이용해야 했지만, 이 제과점에서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였다. 밀가루를 많이 받기 위해 여러 업체의 코드를 이용하여 정량보다 많은 밀가루를 지급받았지만, 실제로는 하루 5포대 정도만 이용했다. 이 중에서도 빵 생산에 이용된 것은 2포대 정도에 불과했다.

창고에 쌓여 있는 밀가루

커피 제조에 사용된 물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빵과의 전쟁”에 대응한 제과점 인수

(민중들의) 제과점 인수 며칠 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국민 빵 계획 5의 일환으로, 공급 및 생산을 위한 지역위원회(CLAP) 6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100여 개 지역 제과점의 활성화를 공표했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어떤 제과점의 밀가루 투기 의혹이 있을 경우, 해당 제과점은 국가에 인수되어 소유권이 CLAP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빵과의 전쟁”을 추구하는 세력은 법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었다.

이 발표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발표 후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두로의 지원과 문화운동의 집 “라 민카 7,” 그리고 국가 프로젝트 누에스뜨라아메리까 8의 플랫폼인 꼬뮤니다드 알 만도 9 및 까라까스 시 정부의 협업을 통해 CLAP과 여러 단체들이 모여 이 제과점을 인수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단체에는 알뚜로 미체레나 10, 미시아 하신따, 11, 하르딘 미라플로레스 12, 빅또리아 데 알따그라시아 13 등이 있었다.

호세 엔리케 솔로르자노 “요다”, 라 민카 대변인

라 민카의 설립자 중 한 명인 호세 엔리케 솔로르자노 모랄레스 “요다 14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민중을 구하기 위한 민중의 직접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경제 전쟁으로 인한 공격을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조직된 공동체와 혁명적 과정을 통해서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이 생산 영역을 회수해서 민중에게 돌려줄 것이다.” 2015년에 라 민카는 개인 생산자 및 빵 생산업자 연합의 모임 15을 결성했고, 이 모임은 소규모의 빵 생산업자들을 돕기 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우리는 민중의 힘에 기반한 단체들과 함께하는 지역 공동체로서, 이 제과점을 인수해 빵이 하나의 상품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모두가 접근 가능하고 건강한 음식이 되도록 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상업적인 제과 산업 논리를 역동적인 지역 제과점으로 바꿀 것이다. 거기에는 착취하는 사람도, 착취당하는 사람도, 노동의 구별도 없다. 노동자와 생산자 모두가 자유롭고, 그들의 서비스가 만드는 경제적 이익이 단지 누구 한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중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투자에 이용될 것이다. 운동장과 인도의 수리, 문화 활동 창조, 통합 진단센터의 설립 및 그 지역의 CLAP 강화 등에 이용되는 것이다.”

새롭게 생산된 빵과 새 가격

새로운 공동체 제과점을 위한 불꽃

까라까스에서 문화단체와 조직된 민중이 제과점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변의 주역들은 이번 제과점 인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불꽃을 하나 지폈다. 민간 제과점은 이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저 이익을 위해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제과점을 운영한다면, 그들은 이 혁명에서 모든 것을 박탈당할 것”이라고 요다는 말한다. 해당 제과점은 ‘공동체 제과점 라 민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 제과점은 전통적인 밀가루 빵을 만들어 파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밀가루 대체재를 사용할 것이고, 더 많은 생산자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분업에 대해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사회적 관계를 바꾸기 위해서 모두가 경영과 빵 제조, 청소, 공동체와의 소통 등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이다. 단지 제빵사나 빵 만드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혁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에 필요한 모든 임무를 맡는 것이다. 문화나 예술, 철학, 빵, 직물 등을 만들 때에도, 총체적 인간으로서 일할 것이다.

증대된 빵 생산량

이 새로운 단계를 위해서, 라 민카는 수년 동안 해당 제과점에서 비위생적이고 부당한 노동 환경에서 고통받아 온 노동자에 의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한다. 우리의 적은 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적은 바로 고용주이다”라는 내용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도 만날 것이다.

주방은 분주하다. “교사 민중” 내생적 개발 센터 16의 동지들이 빵을 굽고 있기 때문이다. 제과점의 대변인이 마이크를 들고서 어떻게 이 새 공간이 식량에 대한 일상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정문이 열리자 손님들은 갓 구운 신선한 빵을 구입하려고 제과점으로 들어섰다. 몇 분이 지나자마자, 376개의 빵이 합리적인 가격에 팔려 나갔음이 장부에 기재되었다. 이제부터 이 제과점은 밀가루 10포대를 빵 생산에 이용할 예정이다. 이는 하루에 만여 개의 빵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우파들이 경제 전쟁으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는 강해지고 활력을 얻을 것이고, 더 큰 걸음을 지속적으로 내디딜 것이다.”

Notes:

  1. Baralt Ave
  2. Mansion Bakery
  3. La flaca (라 플라카)
  4. Lenis Coromoto Murillo
  5. Bread Plan for the People
  6. Local Committees for Supply and Production (스페인어로 CLAP)
  7. House of Cultural Movements, “La Minka”
  8. Nuestramerica
  9. Comunidad al Mando
  10. Arturo Michelena
  11. Misia Jacinta[/ref[ 꾸아르뗄 데 미라플로레스 17Cuartel de Miraflores
  12. Jardin Miraflores
  13. Victoria de Altagracia
  14. Jose Enrique Solorzano Morales “Yoda”
  15. Gathering of Free and Associated Bread Producers
  16. “Teacher People” Endogenous Developmen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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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th, 2017 로 administrator

2017년 4월 25일 에콰도르 끼또
글 : 마리아 에밀리아 두란 가르시아 1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 여성, 여성주의 활동가)

번역 : 배경진 (국제팀, ISC)
황정은 (사무국장, ISC)
심태은 (숲 한글판 편집장, ISC)

20세기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 여성의 시민권을 보장받기 위한 정치 투쟁으로 여성주의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개발도상”국 여성은 기존의 식민지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정치경제적 관계에서 기인한 아주 다른 조건에 맞닥뜨려야 했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 2의 사회운동은 국제적인 자본주의 질서에서 “여성주의자”가 된다는 것, “주변부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정치적 성찰에 기반해 지난 몇십 년을 거쳐 성장했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주의 의제는 여성 농민, 노동자, 원주민, 아프리카계, 이주민,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선 가사노동자의 투쟁에서 두드러지며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은 이 지역에서 일고 있는 여성주의 운동에 반영되어 있다.

한눈에 보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은 지난 몇십 년 동안 대체로 경제 성장을 구가했다. 이로 인해 인구 대다수의 생활 여건이 좋아졌고, 여성 권리를 인정하는 법체계도 확대되었다. 즉,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없는 삶을 위한 법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시행되었으며, 국가에서 여성의 정치경제적 참여를 인정했고,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이 신장되었다. 이러한 진보로 이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여성의 처우는 개선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 질서로 회귀라는 위협을 가한다. 신자유주의 질서라 함은 노동이 불안정화되고, 빈곤이 여성화되고, 석유, 가스, 광물, 물과 같은 천연자원 추출을 위해 사람들을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제로 대다수 여성의 생명은 위험해졌다. 특히 역사적으로 배제된 원주민, 아프리카 후손, 농민, 도시빈민, 레즈비언, 트랜스 젠더와 트랜스 섹슈얼 3 여성, 즉 서양의 백인 부르주아지 여성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진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 상황 하에서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와 같이 진보적 정부가 들어선 국가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에서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권리 확대에 초점을 맞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건설을 제안했다. 활동가 히오꼰다 모따 4에 따르면,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반가부장적이며, 진정한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원주민, 아프리카계, 생태적, 성적, 젠더의 다양성, 학생과 노동자 투쟁과 함께하는 5” 대중적 여성주의 실천이 이루어졌다.

대중적 여성주의는 사회운동 진영이 역사적으로 억압받아온 모든 부문, 특히 생명까지 위협하는 문제에 직면하는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고 사회정의를 되찾기 위한 정치적 기치이다. 이러한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멕시코 : 국가가 성폭력과 페미사이드(여성살해)라는 범죄를 “용인”해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침묵해온 멕시코 사회에 반격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백 개의 여성단체가 집결했다.

중앙아메리카 : 80년대 무력 충돌의 산물과 다른 국가로 강제 이주로 중앙아메리카는 여성에게 매우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선조부터 살던 영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온두라스의 생태주의자이자 원주민 여성인 베르따 까세레스 6와 같은 지도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남아메리카 : 이 지역에서 눈에 띄는 투쟁은 국가가 낙태 비범죄화와 같은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을 인정하게 만드는 투쟁, 불평등한 관계를 전환시키는 사회경제와 사회주의 경제 추진, 그리고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모델인 채굴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카리브해 섬 국가 :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럼에도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낙태를 완전히 합법화하고 여성의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 측면에서 매우 앞선 유일한 국가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시나리오는 특히 여성을 위협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폭력의 상태를 자아낸다. 여성의 몸 전반에 걸쳐서 여성의 재생산권과 민족-인종적, 사회 계급적 정체성이 연결되어 다양한 형태의 억압이 나타난다. 이러한 억압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을 생물학적 번식자, 가족과 공동체의 돌보미, 무급 노동자로 규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다수의 여성주의자는 이를 “삼중 착취(생물학적, 사회적, 경제적)”라고 부른다. 이러한 착취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대다수의 여성이 차별받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과 노동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지 못한다.

자본주의에 대항한 여성의 경제투쟁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자연을 착취했다. 이런 착취 과정을 발생시키는 주요한 경제, 사회, 지정학, 환경 문제는 바로 삼림, 정글, 초원과 바다에서 천연자원(금, 다이아몬드, 탄소, 목재, 물, 가스, 석유)을 얻기 위해 경제적 논리로 생겨난 채굴주의에서 기인한다.

현재 자본주의로 인해서, 특히나 초국적 기업이 있는 곳에서는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서는 경작 가능한 토지와 물,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어 원주민, 아프리카계, 농민 공동체가 도시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도시의 구조를 형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토론이 논의의 장에 재등장했다. 예를 들어, “비공식 경제”는 대부분 도시 빈민, 특히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들이 가부장적이고 채굴주의적인 자본주의에서 물려받은 지위인 “가족과 공동체 돌봄의 재생산자”이기 때문이다.

노동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최악이다. 여전히 임금과 모성 인정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돌봄 노동은 국가 경제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돌봄 노동은 가족과 타인을 돌보는데 여성이 들이는 시간 7을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반으로서 가족과 공동체의 돌봄을 무시하고, “국가 경제 발전”에서 여성의 기여를 무시한다.

지난 10년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과거 “주부”라고 불린 가사 노동자가 경제적으로 인정받고, 사회보장이나 노동법과 같은 공적 체제에 포함되도록 하는 중요한 조직적인 노력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는 이런 노력의 최전선에 선 나라이다 (뒷부분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반면에 농촌 여성은 그들의 영토를 지키고 지역사회경제 형태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2016년 3월 3일 온두라스 원주민 지도자 베르따 까세레스는 정부가 암묵적 지지를 보낸 수력발전소 사업을 밀어붙인 기업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녀는 까세레스는 렌까 8원주민 공동체가 신성히 여기는 괄까르께 강 9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었던 수력발전소 사업을 중단시켰다.

“더 이상의 희생은 그만: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의 물결을 만들어 낸 주요 동인은 지난 2년 간 이 지역 전역에서 벌어진 여성살해 10이다. 여성살해를 통해 여성은 다른 사람, 즉 남편, 가족, 교회 또는 정부의 소유물로써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몸은 자신의 소유이지만, 실상 어떠한 형태로든 처분이 될 수 있는 대상이다. 사적 소유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상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토와 여성의 몸(특히 사회적 조건, 인종/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가장 빈곤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몸)에도 적용된다. 이 개념 때문에 여성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비롯해 많은 권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여성살해가 대다수의 여성이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고유한 문제로써 가시화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나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법 영역의 공공 시스템에 존재하는 차별 때문에 공식 통계는 많지 않지만, CEPAL에 따르면 2014년 한 해에만 라틴 아메리카 25개국에서 2,089명의 여성이 여성살해로 사망했다 11. 텔레수르 12는 여성살해율 상위 25개국 중 14개국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라고 보도했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의 여성살해율은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또한 높은 여성살해율을 보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내 여성살해 (출처 : www.infobae.com)]

가장 최근에 여성들이 집회에 나선 것은 과테말라의 국제 여성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진행된 행사였다. 40명의 소녀들이 보호자가 신체적, 심리적, 성적으로 자신들을 폭행했다고 비난한 것을 이유로 산 채로 갇혀 불에 타 숨졌다 13. 이와 같은 다중 여성살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법에서도 다루지 않고 무시하는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 기관을 비판하기 위한 새로운 슬로건이 되었다. 여성(특히 인종, 민족, 계급 때문에 법적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권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더 이상의 희생은 그만: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대중 집회와 지속적인 여성주의 활동가 캠페인이 형성되었다. 이 슬로건은 도시, 원주민, 아프리카계, 노동자, 농민, 학생, 예술가, 자발적 임신 중단의 비범죄화 및 합법화 찬성론자,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및 트랜스섹슈얼 여성 단체들이 결집하여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고, 이들은 현재 여성살해 사건을 다룰 때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성차별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난 사법 시스템의 구성을 포함하여 폭력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권을 획득하기 위해 공공 정치를 개선하고자 한다. 특히, 이는 여성살해를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자본주의와 연관된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포함된다.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정부로의 회귀하려는 위협과의 싸움

2015년 12월에 아르헨티나에서 보수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14 대통령이 당선되고,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15 대통령의 민주적 통치를 부인하는 국가로 회귀하려는 미셸 테메르 16 부통령이 실권을 잡으면서, 라틴 아메리카 경제의 주축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파라과이, 페루, 콜롬비아와 함께 CNN과 같은 민간 언론과 역내 기구(미주기구 17, 메르코수르 18 등)를 이용하여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니카라과, 쿠바 등 진보적 정부에 대한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선전을 전 대륙에 퍼뜨리고 있다. 특히, 이들의 공격은 베네수엘라를 주 대상으로 삼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국내적으로도 사회경제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국민들은 베네수엘라 기업이 기본 식료품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사유화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전쟁이 시작된 원인 중 하나는 생리대와 같은 여성용품과 여성들이 주로 구매하는 기저귀 품귀현상이다. 이 현상이 식료품으로까지 번졌다. 여성이 가정에서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책정한 “더욱 합리적인” 가격 19에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는 것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은 피임약(알약, 패치, 주사약)과 같은 의약품으로까지 확대되어, 약을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더라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큰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2010년 이후, 베네수엘라는 청소년(15~19세) 임신율이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가장 높았다. 여성주의 운동세력은 여성을 인정하고 여성을 위한 정치적 동등성을 확보하고, 노동 평등,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낙태 비범죄화, 성교육, 피임약에 대한 접근권)에 대한 권한부여의 정치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여성주의 건설을 주장한다. 이 외에도, 여성은 인구가 밀집한 동네나 시골 지역에서 공급과 생산 지역위원회(스페인어로 CLAP)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을 분배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공동체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경우, 은행가 출신 우파 후보 기예르모 라소 20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레닌 모레노 21는 국민의 삶, 특히 에콰도르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시민혁명(2007) 22은 모성과 성적 권리 및 재생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 설립, 이주민 귀환을 위한 인센티브, 성평등을 위한 국가 위원회 창설, 사회보장 제도 내에서 가사일을 인정할 것, 대중 선거에서 정치적 정당의 선전 등을 통해 많은 여성의 삶을 존중하고자 했다. 현재 에콰도르 내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어젠다를 정리하여 새로운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하여 인구 밀집 지역 및 농촌지역에 사는 여성에게 특히 영향을 미칠 낙태의 범죄화 같은 여성에게 가장 위협적인 문제와 관련한 토론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3월에는 볼리비아 다민족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경우를 확대하는 법안 승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해당 법안은 성폭행, 근친상간, 어머니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외에도 태아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임신 여성이 여아 또는 청소년일 경우, 어머니가 극심한 빈곤에 처했을 경우에 임신 8주 미만일 때의 낙태를 허용하고자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여성의 몸에 대한 선택권과 관련하여 라틴 아메리카 대륙 차원에서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볼리비아의 대다수의 원주민 사회가 역사적으로 식민지주의와 종교적 생각을 강력하게 내포하고 있고, 여성이 사회정치적 참여를 요구하고 볼리비아 혁명에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사회적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법안의 통과는 특히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투쟁은 여성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 경제, 정치적 불평등은 수 세기에 걸친 식민지 시대와 자본주의의 착취의 산물이다. 민중의 투쟁은 분명히 이러한 불평등을 감소시켰지만, 국가와 사회의 계급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모델은 여전히 여성, 노동자, 농민의 삶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폭력에 맞서, 우리는 아래(전통적 공동체, 사람들, 영토)로부터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을 수호하는 것은 존엄성과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길을 수호하는 것이다.

주: 라틴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여성주의자와 여성 사회단체 간의 교류를 추구하기 위해, 많은 단체가 온라인 활동 전개하고 있으며, 본 글에서 제시되었던 모든 문제와 기타 동등한 권리에 대한 논의를 인터넷 상에서 이어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여성주의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소개한다.

베네수엘라 – 페미니스트 스파이더: http://encuentrofeminista.weebly.com/
베네수엘라 – 혁명의 가슴: 생명의 안녕을 위한 단체들의 네트워크: https://tetasenrevolucion.wordpress.com/
에콰도르 –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 http://www.vivasnosqueremosec.tk/
에콰도르: 사회연구, 실천 및 참여 재단: http://www.fedaeps.org/
볼리비아 – 창조하는 여성: https://www.mujerescreando.org/
쿠바 – 쿠바는 가능하다: https://cubaposible.com/ultimos-apuntes-polemica-aborto-cuba/
과테말라: https://porunavidavivible.files.wordpress.com/2012/09/feminismos-comunitario-lorena-cabnal.pdf

Notes:

  1. María Emilia Durán García
  2. 여성주의 운동과 여성의 운동은 차이가 있다. 모든 여성이 가부장제, 신식민지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기반한 지배에 대한 여성주의 정치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여성주의자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여성주의자는 “여성”을 여성이라는 젠더에 부여된 사회적 구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여성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배제된 여성을 포함하는 운동을 가리킨다.
  3.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 성과 자신이 느끼는 성이 다른 사람을 지칭한다. 이 중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을 트랜스 섹슈얼이라고 부른다.
  4. Gioconda Mota
  5. 모따 구띠에레스 엔 라쁘레아(Mota Gutiérrez en Laprea), 2014, http://www.albatv.org/Haciendo-feminismo-popular.htm 
  6. Berta Caceres
  7. 여성주의자 실비아 베르게르(Silvia Berger, 2014)는 여성주의 경제가 남성중심적이고 편파적인 경제를 폭로하고 비판하며, 역사적으로 여성이 하는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활동에 근본적으로 주목해 경제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한다. 시장(가정의 외부영역) 지향적 활동을 가사노동의 재생산, (무급) 돌봄과 자체 소비를 위한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여성의 노동이 철저히 가려진 가정 영역은 시장 외부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 사회의 안녕을 생산하는 경제 활동에 기여하는 여성의 중요한 측면을 숨긴다. 여성 노동을 거시경제 총계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돌봄 노동을 사람들의 삶 및 사회적 조건을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여성을 경제주체로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권력과 젠더의 관계를 폭로한다.
  8. Lenca
  9. Gualcarque River
  10. 여성살해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성별 때문에 집, 가정 또는 공동체 내의 대인관계 등에서 타인에 의해, 또는 국가와 국가기관의 행동 또는 방관으로 인해 자행되거나 용인되는 여성의 살해를 의미한다.” CEPAL (Comisión Económic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 2016. 지속가능 개발 어젠다 내 여성의 자주성과 평등. http://repositorio.cepal.org/bitstream/handle/11362/40633/4/S1601248_es.pdf 
  11. Ibid (2016, 114).
  12.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살해”. TELESUR, 2016.7.5. http://www.telesurtv.net/telesuragenda/Feminicidio-en-America-Latina-20160705-0027.html
  13. 과테말라: 집에서 불에 타 숨진 소녀와 황폐화된 가족. TELESUR, 2017.3.19 http://www.telesurtv.net/news/Guatemala-desolacion-en-familias-de-ninas-quemadas-en-albergue-20170319-0021.html
  14. Mauricio Macri
  15. Dilma Rousseff
  16. Michel Temer
  17.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
  18. MERCOSUR
  19. 민간 슈퍼마켓에서 책정한 터무니없는 가격과 싸우기 위해 정부에서 합리적인 상품가를 책정했다.
  20. Guillermo Lasso
  21. Lenin Moreno
  22. Citizen’s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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